‘세상에서 가장~’ 너도 봤어?…우연한 알고리즘의 특별한 순간

한겨레 2023. 3. 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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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의 공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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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휴대전화에 한파 경보가 울린다. “이렇게 추운데 왜 밖에서 보자고 했어. 집으로 간다니까.” 카페에 먼저 도착한 민희가 말한다. “야. 집이 더 추워.” 내가 말한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가스비로 옮겨간다. “너 가스비 얼마 나왔냐?” “무서워서 아직 확인도 안 했어. 기본 30만원은 나온다며?” “나 이번에 월세보다 많이 나왔잖아.” 커피 대신 주문한 믹스베리 티의 가격은 9500원,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가스비는 운이 좋아야 20만원이다. 추운 날엔 집에 있으라는 것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동사를 피하고 싶다면 집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좀 틀어놓고 카페로 대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뜨뜻한 카페 안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근데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는 평균 온도가 영하 50도인 지역도 있대. 글쎄 거기 사람이 산다니까.” 나는 컵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먹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잇는다. “이렇게 면발 잡고 15초만 있으면 그대로 꽝꽝 굳는대, 글쎄.” 그런데 내 말을 듣는 민희는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다. “어, 나도 알아 그거. 영하 50도에서 팔팔 끓는 물을 하늘에 던지잖아?” 내가 말한다. “바로 얼음 결정 되잖아. 헐. 너도 그거 봤구나.” 우리는 허벅지를 짝짝 친다. “대박. 너도 봤어? 그 영상 나만 본 줄 알았는데.” 휴대전화로 유튜브 앱을 실행시켜 우리가 같은 걸 본 게 맞는지 확인한다.

채널에는 최대 영하 71도까지 내려가서 러시아에서도 유배 지역으로 불렸다는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나라’를 비롯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세상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세상에서 가장 아이를 많이 출산한 사람까지 뭐든 간에 ‘세상에서 가장’으로 시작되는 짧은 영상들이 업로드돼 있었다. 조회 수가 높은 편이 아니었던 그 영상은 웬만큼 찾아보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채널 주인공은 기행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듯했다.

‘세상에서 가장~’을 함께 보다니

나는 신이 나서 물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하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 영상도 봤어?” 민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신속하게 그 영상을 찾아 튼다. “이 사람 목소리 좀 들어봐.” 화면 속에서는 나이 27살에 키가 60㎝라는 인도네시아 여성이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방에 있는 모든 가구가 인형의 방처럼 그의 키에 맞춰 작아져 있다. 아이의 키와 어른의 얼굴을 가진 그에게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목소리다. 민희가 놀라며 말한다. “이거 음성 변조한 거 아니야?” 여자의 목소리는 듣자마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톤이 얇고 높았다. 꼭 헬륨 가스를 마셨거나 ‘빨리감기’를 한 것 같았다. “근데 이 목소리도 들어봐.”

나는 이어서 세상에서 제일 큰 남자의 영상을 찾아 튼다. 어떤 집의 현관문을 열자 문 가득히 거대한 어깨가 보인다. 곧이어 하얗고 높은 방에 놓인 거대한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가누며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자의 키는 251㎝다. 방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아마 움직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봤지?”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낮고, 굵고, 느렸다. 꼭 거북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목소리와 사람의 크기가 상관이 있는 건가?” “진짜 극단적으로 비교가 가능해서 깜짝 놀랐어. 무슨 자연의 섭리라도 있는 줄 알았다니까.” 나는 묵혀둔 비밀을 털어놓은 것처럼 개운해진다. “이거 누구한테 꼭 말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푸네.” 기다란 소파에 거대한 다리를 포개고 옆으로 누운 남자를 보며 민희가 말한다. “근데 이 남자 왜 우아하니?”

민희와 나는 깔깔 웃는다. 넓고 넓은 유튜브에서 이런 수상한 영상을 함께 보다니. 이런 의외의 공통 시청 기록을 발견하는 것은 21세기의 우정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었다. 모두 각자의 취향과 알고리즘 안에 꼭꼭 숨어 사는 시대의 흔치 않은 우연이었다. 이 감정을 반가움이라고만 불러야 하나 아리송했다. 반가움과 기쁨 사이 어딘가에 이를 위한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우리만의 엄청난 발견

다음날은 이순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일하자고 만나서는 카페에 앉아서 신나게 수다만 떨었다. 어제 다른 친구와, 목소리와 크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결국 소리이고, 몸은 소리의 울림통이니까 그럴듯한 가설 아니냐고 물었다. 이순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인간이 더 오래 사는 법을 발견했는데, 지금보다 2배로 살 수 있는 대신 2배로 느리게 성장해야 한대.” 나는 잔뜩 흥분해서 받아쳤다. “어머, 어쩜 테이프를 느리게 감는 것과 똑같니!” 순간 이순과 찡하고 통하는 기분을 느꼈다. 출처도 내용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무척 흥미로움에는 여지가 없었다.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보다 4배 더 빠르게 간대. 근데 심장 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4배 정도 빨리 뛰더라.” “맞아. 햄스터도 그렇고.”

이순과 나는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것 같지만, 우리가 모두 다른 목소리를 가진 것처럼 각자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걸 과학적으로 논증할 방법은 없었지만, 당장 우리 사이에는 무척 엄연하고 공정한 한가지 이치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하루살이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들리지 않는 수준일지도 몰라.” “결국 시간이라는 건 없고 내가 체감하는 만큼 무언가가 흐르는 건가 봐.” 우리는 엄청난 결론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최대한 느리게 살면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빠르게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 그만큼 삶은 빠르게 닳아버릴 테니까.”

땡볕 아래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10년 동안 해야 할 일을 1년 동안 한 사람은 폭삭 늙어버리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반대로 1년 동안 할 일을 10년 동안 하는 거야.” “그럼 우리는 영원히 늙지 않겠네.”

이순과 나는 푸하하하 웃어버린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중요한 발견을 했거나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허무맹랑한 걸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삶의 대부분은 알 수 없고,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떠들면서 나아갈 뿐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우리의 시간이 영원처럼 흘러갔고, 그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는 사실이니까.

※연재를 마칩니다. 작가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글 쓰고 말하는 사람이다. 에세이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유료 뉴스레터 ‘격일간 다솔’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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