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에 미친 ‘이 나라’···음란물 규제하자 지도자도 갈아치웠다 [사색(史色)]
[사색-14] “더 깊이, 신부님, 지금 미세요...아...아...좋아요! 성 프란체스코님! 이제 그만! 나 죽겠어요.” (‘계몽사상가 테레즈’ 中)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혁명은 숭고한 가치를 내걸고 전제정치를 무너뜨립니다. 그들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면서 평등을 외쳤고, 귀족으로부터의 속박을 거부하며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있었기에, 한반도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었지요.
서적상들은 권력자의 눈을 피해 외투 아래로 시민들에게 책을 건넸지요. 계몽주의의 교본인 루소의 ‘에밀’도, 시대의 철학자 볼테르의 저작도 아니었습니다. 진득한 성관계가 노골적으로 묘사된 ‘포르노 작품’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완성한 건 농밀한 포르노였다는 반전의 역사였지요. 오늘 이를 사색합니다.
프랑스 학자 다니엘 모르네. 1910년 그는 문득 궁금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프랑스 혁명기, 사람들은 어떤 책을 가장 많이 읽었을까.” 혁명의 지적 기원을 찾기 위한 의문이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학자들은 그 시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 건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라 여겼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총 2만권 중 루소의 사회계약론(Du Contract Social)은 딱 한권이었습니다. 대부분 은 감상적인 소설이나, 모험담, 그리고 야한 소설들이었습니다.
물론 100년 전 학자의 연구 방식은 허술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사회계약론을 알기 쉽게 풀어 쓴 판본이 출판되기 전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여전히 모르네의 연구가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철학서적만큼이나 외설로 가득한 포르노가 민주주의 정신을 추동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검증하면서였습니다.
이 탁월한(?) 명언을 남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디드로였습니다. 그는 작품 ‘살롱’에서 자신만의 ‘누드관’을 남겼지요. 백과전서의 대표 저자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디드로. 혁명의 지적인 토대를 마련한 그가 이런 외설스러운 문장을 남기다니요. 어쩐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혁명 주동자였던 미라보와 생쥐스트 역시 혁명 이전에 포르노 작가로 활약했었습니다. 디드로는 ‘야설’을 재밌게 쓴 덕분에 1749년 감옥에 갇혔었지요.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의 가장 숭고한 감정과 순수한 다정함의 밑바닥에는 ‘고환’이 있다”고요.
혁명의 아버지들이 포르노를 쓴 이유는 간단합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포르노가 종교와 정치의 권위를 비판하기 가장 좋은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끈적하게 묘사한 난잡한 성관계 이야기는 삽시간에 대중에게 퍼졌습니다. 그만큼 절대왕정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비도덕성을 공격하는 데 탁월했지요.
문자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책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파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왕과 왕비 귀족과 성직자의 문란한 성관계를 폭로하는 포르노야말로 전제정을 무너뜨릴 가장 좋은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포르노 속 끈적한 성교를 통해 퍼져나간 셈이죠. (민주주의자인 제가 ’색‘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포르노는 전제정치를 공격하는 계몽주의에 자양분이 됩니다.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문지기 동부그르의 이야기’, ‘경솔한 보석’, ‘계몽사상가 테레즈’ 같은 걸출한 야설들이 모두 1740년대에 태동합니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라 메트리의 ‘인간기계’가 나온 시기와 정확히 똑같았지요. “포르노그래피 출판의 성장기가 계몽사상 절정기의 시발점과 일치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미국 유럽사학자 린 헌트)었습니다.
그럼에도 왕과 왕비, 귀족과 성직자의 문란한 성관계를 폭로하는 포르노는 시민들에 전제정의 위선을 알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야설은 일견 왕에 대한 경외가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이 책들은 퍼지면 퍼질수록 시민들은 “왕은 강력한 왕국을 이끄는 남성다운 주인”으로 생각했지요. 루이14세는 태양왕이라는 별칭답게 정력이 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지요. 프랑스 국력이 신장하던 시기였기에, 야설들도 ‘외설’적일지언정, ‘불온’하게까지 여겨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1748년 막을 내린 전쟁에서 프랑스는 더 이상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 없었지요. 계몽주의 서적과 포르노 출간물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됩니다. 공권력이 이를 통제하려해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요.
특히 포르노 소설은 혁명 직전에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1789년부터 5년 동안 200개에 이르는 외설 팸플릿과 서적이 출판됐지요. 당시 빈약한 출판 상황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숫자였습니다.
루이16세의 부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특히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많이 이름이 올랐습니다. 국가에 대한 불만을 오스트리아 출신 외국인 왕비에게 풀게 된 것이지요.
그녀는 포르노 속에서 시종들과 수시로 잠자리를 한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아들과 근친상간까지 벌였지요.(실제로 앙투아네트는 이 혐의로 처형됩니다). 물론 사실은 아니었지만, 혁명의 아버지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우는 일이었거든요.
실제로 1790년 파리 경찰이 압수한 서적 목록에는 ‘마리앙투아네트의 방탕하고 추잡스러운 사생활’, ‘프랑스의 탕녀’가 가장 많이 압수됐습니다. 앙투아네트의 음탕한 사생활이 삽화로 묘사된 작품들이었지요.
어떤 방해물이 있더라도 등장인물들은 기어이 성적인 쾌락을 맛보았고, 독자들은 부지부식간에 성적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로버트 단턴의 표현대로 “자유와 난봉은 연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당국이 철학서적과 야설을 구분 않고 ‘철학’이라고 한 데 묶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혁명 세력이 포르노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기 시작한 무렵인 1791년 7월 국민의회는 포르노를 규제하려는 조치를 시행하려고 하죠. 또 한 번 정치적 포르노가 자신들의 집권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799년 경찰청장은 “도덕은 공화국의 신경 중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을 정도였지요. 1794년 ‘정치적’ 포르노는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정치적이면서 상업적인 야설들만 살아남게 됐지요.
포르노가 정치를 뒤흔든 건 먼 프랑스혁명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한반도에서도 음란한 소설이 혁명의 씨앗을 뿌린 사례가 있습니다. 유명한 ‘자유부인’이 그 주인공이지요.
내용은 단순합니다. 대학교수 장태연의 부인 오선영은 선량한 가정주부였습니다. 동창회에 나갔다 친구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이를 동경해 취직하게 되지요. 화사한 바깥 세계에 점점 물든 오선영이 결국 사교춤에 빠져 남편 제자와 춤바람이 납니다.
이 작품이 이승만 정권의 고위 인사의 실제 내용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제가 커집니다.(마치 프랑스혁명 직전처럼요!)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황산덕 교수는 ’자유부인‘이 연재되는 서울신문에 “대학교수 부인이 대학생에게 희롱당하는 불량한 내용이 신문 지면에 연재 될 수 없다”고 게재 중단을 요청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역시 사회적 논란이 일자 작가 정비석을 경찰이 연행하도록 명령을 내렸지요.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봅니다. 음란한 소설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뒤흔드는 일들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포르노보다 더한 막장을 보여주면서 시민을 좌절케 하고 있지요. (여당인지, 야당인지는 독자 여러분 각자의 해석에 맡깁니다.) 기다립니다. 현실을 포르노처럼 만든 모든 정치인들에게 분노의 철퇴를 날릴 그 날을요.
<네줄요약>
ㅇ프랑스 대혁명 시기 시민들은 ‘야설’ 작품을 탐닉했다. 대혁명의 아버지들도 ‘야설’을 자주 썼다.
ㅇ그들은 야설을 통해 전제정의 모순을 깨닫고, 성의 자유에 눈을 떴다.
ㅇ대한민국 4·19 혁명 직전에도 ‘자유부인’이 대한민국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해석됐다.
ㅇ민주주의의 기둥에는 포르노가 켜켜이 쌓여있을지 모른다.
<참고문헌>
ㅇ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프랑스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셀러, 도서출판 길, 2003년
ㅇ린 헌트,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책 세상, 1996년
ㅇ천정환·정종현, 대한민국 독서사, 서해문집,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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