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연기합니다"…美 '칼날'에 中 반도체몽 정말 휘청인다 [김지산의 '군맹무中']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3. 3. 2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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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지난 2018년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사
미국이 공을 들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 흔들기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술 장벽을 경험하기도 전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낮은 사양의 범용 제품마저 마음껏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자존심 SMIC가 이달 6일 핵심 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베이징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연기한다고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지난달 자오하이쥔 CEO가 실적 발표 때 장비 문제로 베이징 징청 프로젝트가 길게는 반년 연기될 거라고 고백한지 한 달 만에 또다시 장비 문제가 돌출된 것이다.

베이징 징청 프로젝트는 SMIC가 76억달러(약 9조8280억원)를 들여 짓는 새 공장이다. 2021년 1월 착공해 2024년까지 완공할 예정인데 완공이 반년 더 지연될 수 있다.

SMIC는 문제의 장비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비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장비가 미국산일 거라고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2020년 12월 거래제한 명단에 SMIC를 올렸다. 상무부 허가 없이 미국 기업은 SMIC에 물건을 팔 수 없다.

그러잖아도 중국 경기 하강 국면에 전자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SMIC 실적은 하강 곡선이다. 1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10~12% 감소하고 총마진은 19~21%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창장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로부터 주문이 중단됐다. 이 회사는 최근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주문 70%를 줄였다. 역시 신규 공장 건설을 연기하고 인력의 10%를 감원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여파로 YMTC 거래 업체인 세계 2위 반도체 패키징 업체 앰코가 2월 말 1주일간 상하이 공장 가동을 멈췄다.

영국 반도체 회사 암(Arm)이 설립한 합작 기업 암차이나는 전체 직원의 약 13%인 95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 칩을 생산하지 않고 암 제품을 중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관영 신화사는 회사 관계자를 인용해 시장 전망이 좋지 않은 데다 미·중 긴장 관계 때문에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지난해 문을 닫는 반도체 관련 기업만 5746개. 2021년 3420개에서 1년 만에 68%가 늘었다.

smic 로고

중국 내에서는 반도체 사이클 관점에서 지금이 쇠퇴기라는 분석과 함께 망한 기업들 대부분이 보조금을 노린 터무니 없는 곳들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0년에만 4만8000개 반도체 설계, 제조 관련 기업이 신규 등록돼 폐업한 숫자만 볼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국이 네덜란드와 일본 등을 끌어들여 중국으로 장비 수출길을 막은 상황에서 중국은 자력으로 이를 돌파하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지난해 10월 20차 당대회에서 "고도의 기술자강과 자립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얼마 전 양회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반도체 자립을 챙기겠다며 과학기술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투여해 '뭐라도 좀 해내라'는 식의 독려 말고는 없다. 뚜렷한 결과물은 아직 없다. 보조금 '먹튀'만 즐비했을 뿐이다.

대표적인 곳들이 파운드리 우한훙신반도체(HSMC)와 취안신집적회로(QXIC)다. 삼성전자와 TSMC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를 제조하겠다며 출범했다. HSMC의 총투자액 목표로 1280억위안(약 24조1130억원)을 설정하고 153억위안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HSMC는 공장을 짓다 말고 폐업했고 QXIC도 영업을 중단했다.

2020년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던 '반도체몽'은 2022년 자급률 25.6%로 불가능한 꿈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첨단 반도체는 5G,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바이오헬스, 인공지능(AI), 첨단무기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반도체에 관한 미국의 '출구 없는 몰아치기'가 계속된다면 중국의 민간경제, 군사, 사회통제는 상대적으로 퇴보할 수 밖에 없다. 성장이 없다면 체제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흔들기는 중국의 근본 질서를 뒤흔들고 가능하면 무너뜨리겠다는 장기 전략인 셈이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성공한다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미국은 화웨이 휴대폰 사업을 좌초시킨 성공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이 반도체에서 통할 거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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