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족 ‘냉장고’엔 더운 공기 빼는 온도조절 장치도 있었다

노형석 2023. 3. 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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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에 살던 선조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계속 보관하며 먹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고대의 냉장고 유적이 처음 드러났다.

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안팎의 공기가 드나들며 온도를 조절시켜주는 통기구다.

문화재청과 연구원 쪽은 "치밀한 설계에 따라 건축된 당대 최고 과학기술 집적체로 오늘날 냉장고와 같은 기능을 했던 왕실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며 "백제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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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서 통기구 있는 석축 저장고 발견
지하저장고 외에 냉장시설 유적은 첫 출현
전북 익산에서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저온저장시설이 확인됐다. 24일 오후 전북문화재연구원은 익산시 금마면 서동역사공원 조성 부지에서 돌로 쌓아 만든 저온 저장시설 2기와 건물지 3동 등을 확인했다며 관련 내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대 한반도에 살던 선조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계속 보관하며 먹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고대의 냉장고 유적이 처음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백제 고도인 전북 익산에서 안팎의 공기가 드나드는 통기구를 틔워 저온을 유지한 흔적이 처음 드러난 7세기초 백제시대의 대형 석축 저장고 2기를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최근 전북문화재연구원이 익산 서동공원 신축터에서 발견한 백제시대의 석축저온저장고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가장 위쪽에 세 개의 통기구가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석축 저장고의 통기구 부분.

발굴된 저온 저장고는 1·2호 두기로, 국내 최초로 외부 공기가 드나드는 통기구(通氣口)를 갖추고 있다. 기반토인 풍화암반층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판 뒤 그 안에 잘 다듬어진 돌덩이들을 쌓아 벽체를 꾸린 얼개다. 1호는 길이 4.9m, 너비 2.4m, 높이 2.3m, 2호는 길이 5.3m, 너비 2.5m, 높이 2.4m로, 크기가 비슷하다. 땅을 판 뒤 석축을 쌓고 바깥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 세 개를 틔운 저온 저장고가 당대 냉장고 구실을 했으며 만들고 이용한 이는 당대 왕실 등 최고 상류층으로 추정된다는 게 현장을 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이 통치기에 팠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이 유적은 익산 서동역사공원 신축터를 발굴 중이던 전북문화재연구원 조사팀이 확인한 것으로 최근 다른 백제시대, 조선시대 건물터들과 함께 드러났다.

석축 저온 저장고의 통기구 부분을 바로 옆에서 근접해서 찍은 모습.

삼국시대의 지하 저장고는 백제 고도인 충남 부여 관북리나 대구 팔거산성 등에서 종종 확인되는 경우가 있지만, 냉장시설이 확실한 유적이 출현한 것은 첫 사례다. 부와 권세를 갖춘 당대 상류층 사람들이 과일·야채·곡물 따위를 낮은 온도에 보관하면서 수시로 꺼내 먹었던 정황을 보여주는 고대 시설이 온전하게 확인된 셈이다.

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안팎의 공기가 드나들며 온도를 조절시켜주는 통기구다. 조사단은 저장고 동쪽 장벽의 상부에 각각 3조의 통기구가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이 통기구는 쪼갠 돌인 판석과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써서 50㎝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밖에서 안으로 19~23도 기울어져 동쪽으로 튀어나온 얼개로 만들어졌다. 저장고 안의 더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밖으로 배출해 내부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기 위한 공법으로 보인다는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익산 석축 저안저장고 유적의 전경.

습기를 막기 위해 잡석과 점토를 섞어 고르게 다진 바닥 면에선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는 식물 열매나 과실·곡물의 흔적들이 나타났다. 참외, 들깨, 딸기, 다래, 포도, 산뽕나무, 밀, 조, 팥 등의 주요 과실과 곡물류 등이 고르게 검출됐다고 연구원 쪽은 밝혔다. 문화재청과 연구원 쪽은 “치밀한 설계에 따라 건축된 당대 최고 과학기술 집적체로 오늘날 냉장고와 같은 기능을 했던 왕실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며 “백제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유적에서 나온 인장와. ‘午(낮 오)’자와 ‘止’(그칠 지)자가 새겨져 ‘오지명’ 인장와라고 부른다.

유적 현장에서는 2기의 저온 저장고 외에도 땅 위나 땅 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만든 고대 굴립주건물의 터 3동, 구상유구(도랑) 1기, 조선시대 기와가마 5기 등이 확인됐다. 유물로는 백제 왕궁리유적 출토품과 같은 벼루조각, 전달린토기 조각, 뚜껑 조각, 암수키와, 인장와(印章瓦) 등도 나와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도판 전북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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