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계 뒤흔든 '더 글로리'…끝없는 변화와 치열한 경쟁이 낳은 K-컬처

김봉석 문화평론가 2023. 3.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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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더 글로리' 전세계 인기…기록에서 증명되는 K-컬처 위상
변방의 정서 아닌 전세계 공감 얻는 보편적 이야기로 성장
변화 추구와 치열한 경쟁 통한 창조, 이것이 K-컬처의 힘
새로운 시도 없이 익숙한 길만 걸은 일본 반면교사 삼아야
김봉석 문화평론가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박연진.'

내용을 모른 채 문동은의 말만 들으면, 다정한 친구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사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복수를 다짐하는 한 맺힌 말이다. <태양의 후예>, <미스터 선샤인>을 쓴 김은숙 작가의 첫 19금 넷플릭스 시리즈인 <더 글로리>는 가해자들을 끝까지 쫓아가 복수하는 통쾌한 스릴러다.

<더 글로리>는 2022년 12월 30일에 여덟 개 에피소드의 파트1을 공개했고, 23년 3월 10일 파트2의 나머지 8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더 글로리>는 1월 1일에 전 세계 5위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1월 11일에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주간 1위였다.

파트2는 3월 13일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달성했다. 파트1은 아시아의 인기에 비해 서구권에서는 덜 주목받았지만, 파트2가 공개되면서 서구권 많은 국가에서 톱3에 들었다. 복수극이 절정에 이르면서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킹덤>, <스위트 홈>, <디피>, <정이> 등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1월 24일 공개를 시작한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은 2월 둘째 주와 셋째 주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으로 처음 1위를 기록한 것이다.

K-컬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허세가 아니다. 기록을 봐도 증명된다. 예술적으로 탁월한 영화에게 상을 주는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와 휴머니즘이 강한 서사극에 높은 점수를 주는 아카데미영화제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함께 받은 영화는 과거에 <마티>(1955) 단 한 편뿐이었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영화사에 선명하게 기록될 영화다. 에미상 감독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한 <오징어게임>은 시청률에서도 기록을 세웠고, SNS에 수많은 밈을 만들어냈다. 세계의 학교와 거리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광경이 뉴스나 SNS에 자주 올라올 정도였다. 대중음악에서는 BTS에 이어 블랙핑크와 뉴진스 등 많은 뮤지션이 세계의 스타로 활동하고 있다.

K-컬처의 시작은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였다. 2010년대 이후 임권택, 김기덕과 홍상수, 이창동 등의 예술적인 영화가 찬사받는 것을 넘어 장르적인 스타일의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나홍진 등이 인정받게 되었다. 정점은 <기생충>이었고, 재미 한국인의 이민사를 다룬 <미나리>에서 연기한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할리우드 리포터>에서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은, 일제강점기에서 1990년대까지 재일교포의 역사를 그린 <파친코>는 애플 드라마로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변방의 특이하고 신기한 정서와 소재를 넘어 세계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인정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대한 선정적인 고발과 다양하면서 현실적인 캐릭터가 호응을 얻었다. 이야기는 강렬하게 휘몰아치고, 인물과 설정은 장르적이면서도 리얼하다.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는 장르적으로 다소 허술하지만, 현실적인 악당들을 극적으로 그려내며 복수극의 리얼리티에 공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강력한 대사들이 귀에 쏙쏙 박힌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곡성> 등 한국영화를 좋아했던 해외의 팬들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강렬하고, 깊숙하고, 처절하다고 말한다.

그걸 한의 정서에 더해진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엄청 빠르고, 대단히 극적으로 변해왔다. 한국인이 경험한 속도와 힘은 한국 콘텐츠에 리얼하게 반영되었다. 한국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했다. 자유롭게, 미래를 생각하며 창조한다. 그것이 바로 K-컬처의 힘이다.

하지만 1990년대 최고였던 일본 대중문화가 기울어 간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일본은 안정된 내수시장 안에서 안전한 성공전략만을 고집했다. 보수적인 제작환경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스토리에 자체 검열을 하며 익숙한 길만을 걸어간다.

지금 K-컬처는 강력하나 언제든 내리막으로 접어들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유로운 발상과 도전이 필요할 때다. 늘 해외 시장과 대중을 생각하며, 새로운 이야기와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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