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WHO도 가르침 받는 英과학자 “백신도, 치료법도 없는 질병에는 빠른 진단이 유일한 해결책”

평창(강원)=홍아름 기자 2023. 3.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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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느 필링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
23일 제6회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 발표
로잔나 필링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가 23일 평창에서 열린 제6회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제6회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 운영 사무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전 세계가 질병의 전파를 막고 적절한 치료를 위한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세계적인 보건 전문가인 로잔나 필링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각국에 다양한 질병에 대응할 진단법 개발을 요구해왔다.

필링 교수는 23일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영국왕립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6회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에서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는 질병에는 빠른 진단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필링 교수는 진단 시스템의 개발과 평가, 구현 방안을 연구하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간염, 뎅기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2014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립열대학회에서 상을 받았고 현재는 국제진단센터(IDC)를 설립해 개발도상국에 진단법을 공급하려 애쓰고 있다.

필링 교수는 이날 행사에서 C형 간염 바이러스(HCV)와 항생제 내성을 예로 들며 진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필링 교수는 “HCV는 걸려도 증상이 없지만 빠르게 치료하지 못하면 간경변 등의 간질환이나 간세포암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심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국가적으로도 건강 관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WHO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HCV 감염자 중 90%를 진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진단율은 20%에 머물고 있다.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링 교수는 “2050년이 되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일찍이 진단하지 못해 전 세계에서 한해 1000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며 “사람마다 적절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하기 위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예상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 미리 진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필링 교수는 각종 질병에서 필요한 진단 시스템은 3A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이 적당하고(Affordable), 결과가 정확하며(Accurate),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Accessible) 한다는 의미다. 필링 교수는 “현장에서 사용할 진단 키트는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어야 널리 배송도 가능하다”며 ‘접근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필링 교수는 질병과 관련된 분자를 검출하는 진단법과 항원 기반 진단법, 혈청을 이용하는 진단법을 비교했다. 그는 “분자 기반 진단법은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접근성이 낮다”며 “반면 항원 기반 진단법과 혈청 진단법은 저렴하고 비교적 간단하게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링 교수는 그러나 “두 진단법은 모두 정확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필링 교수는 “진단법은 접근성과 민감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다”며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요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감도가 100%지만 접근성이 30%인 진단법보다는 민감도가 90%로 조금 낮아도 접근성이 90%로 높은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필링 교수는 “갈수록 시료 채취가 쉬워지는 진단법이 등장하면서 테스트 결과를 바로 데이터로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할 것”이라며 “진단법에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 환자의 진단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련 데이터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잔나 필링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가운데)는 신속한 진단법을 개발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영국 경도상, 유럽 위원회의 호라이즌 2020 항생제 내성(AMR) 상, 글로벌 AMR 혁신 기금 등의 자문을 맡고 있다./영국 경도상 페이스북 캡처

다음은 콘퍼런스 발표 후 조선비즈와의 일문일답.

- 어떻게 진단법에 대해 연구하게 됐나.

“박사과정 때는 성매개성 질환의 한 종류인 클라미디아 감염증에 관한 연구를 해 학위를 받았다. 관련 연구를 하면서 클라미디아 감염증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여성이 클라미디아에 여러 번 걸리면 불임 위험이 높아진다. 불임 확률이 높아질수록 세계 인구에도 영향을 주지 않나. 그래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진단 시스템에 투자하도록 설득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지금부터 진단법을 개발하면 미래에 공중 보건 시스템의 부담과 비용을 낮춘다는 점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보통 3~4년의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고 의료 기관에 과도한 부담이 가는 등 큰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일찍이 진단법에 투자해 조기 진단을 바탕으로 한 치료법을 적용하면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진단법에는 비용과 정확성,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정부에서는 모두 구현할 수 없다며 3개 중 2개를 고르라 했다고 들었다. 이중 2개를 고른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정확성과 접근성을 선택하겠다. 코로나19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실험실에서 검사 시료를 모아 처리한 뒤 진단 결과를 전달했다. 그러나 실험실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신속 검사를 도입하면서 팬데믹에 잘 대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개개인이 진단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판단한다.

반면 비용의 적절성은 절대적으로 판단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정부가 예산 크기에 상관없이 진단법 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나. 상황에 따라 비용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코로나19 진단 시스템은 어땠나.

“무엇보다 진단법을 개발하는 기업이 많아서 검사 비용도 적절하고 접근 가능성도 높았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한국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한 국가 중 가장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외에 항생제 내성이나 다른 질병, 그리고 또다시 올 수 있는 팬데믹에 대비해야하지 않나. 모델링을 기반으로 각국 정부에 진단법의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진단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설이 필요한지도 제안할 셈이다. 현재 전 세계가 질병 진단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 정책 입안자에게 진단법의 사회적 효과와 공중 보건 기여도를 보여주며 더 적극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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