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 학살터…제주 섬 밖에 흩어진 ‘4·3의 흔적’

박미라 기자 2023. 3.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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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념사업위원회, 도외지역 4·3연관 112곳 조사
형무소·학살터부터 4·3 연관 장소, 인물 등 망라
“기억 사라지기 전 4·3 전국화 위한 기록 작업”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 4·3 당시 제주도민 80여명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공

“산지 축항(제주항)으로 가서 (우리를) 배에 실어…목포 가서 내려서 하룻밤인가 자고 마포형무소까지 갔지. 재판을 받는 것이 형식적으로(이뤄졌어). 재판관도 있고, 변호사도 있어야 형식이 되는 것인데 피해자의 진술도 없었어. 마포형무소에 밤에 도착해서 아침에 거기 광장에 전부 앉아서 형을 호명했지. 누구는 몇 년, 이것만 들은 기억이 있어. 재판정에는 가본 기억이 없지. 그 넓은 데 앉아서, 누구누구 얼마라고. 나는 무기라고 해. ‘아이고, 이거 큰일 났구나’. 무기 아니면 20년, 뭐 10년 짜리도 없어” (제주4·3연구소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들> 중 김춘배씨 증언)

당시 제주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당한 제주4·3 사건. 이 참혹한 역사의 흔적은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4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조사한 ‘4·3 기억의 공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 외 지역에 4·3과 연관된 지역은 112곳에 이른다. 4·3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형무소와 학살터 이외에도 4·3과 관련된 인물이 안장된 곳, 관련 인물 생가, 4·3의 배경이 된 정치적 상황을 설명해주는 곳까지 폭넓게 포함했다. 육지의 4·3 연관 장소 대부분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 흔적이 없거나 터만 남았지만 그마저도 사라지기 전 기억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이 있었다고 기념사업위원회는 설명했다.

도외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4·3 관련 장소는 형무소다. 4·3 당시 제주도민들은 절차가 갖춰지지 않은 군사재판과 일반재판을 받고 서대문, 마포, 대전, 대구, 목포, 인천, 전주, 광주 등 전국 각 지역의 형무소로 수감됐다. 당시 제주에는 형무소가 없었다. 제주항 옆 열악한 환경의 주정공장 수용소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배를 타고 육지 형무소로 이송되는 식이었다. 이 중 많은 이들이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총살되는 등 실종돼 제주로 살아돌아온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들어선 곳은 옛 마포형무소 터다. 당시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마포형무소에는 4·3 당시 불법적으로 이뤄진 2차례의 군법회의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500명 내외의 제주도민이 수감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시 제주4·3 당시 80여명의 제주도민이 수감됐었다.

인천소년형무소(옛터)에는 4·3 당시 제주에서 끌려간 408명의 소년수가 수형됐다. 양근방씨 증언을 보면 “아주 큰 배에 이빠이 탔어…죽이러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어. 고개도 못 들었으니까. 인천 간 후 순경인지 간수인지 그 사람이 서류를 인계하면서 ‘5년에 7년’ 그렇게 하는 거야. 그 때서야 징역형 받은 것을 알았지.”

대전 골령골 학살터.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공

대전시 중구의 대전 형무소(옛터)에도 제주도민 300여명이 수형됐었다. 수형인 다수가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집단학살 당했는데, 제주도민 200여명도 골령골 학살터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주 동구에 있는 광주형무소(옛터)에 수감된 제주도민 200여명도 학살돼 돌아오지 못했다.

전남 여수에 있는 여순기념관, 여수 14연대 주둔지 옛터도 4·3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지역에 주둔하던 14연대가 ‘제주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전개된 데 따른 것이다.

4·3기념사업위는 경남 김해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묘도 4·3과 연관이 있는 장소로 분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자 제주도를 찾아 ‘국가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서울 현충원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4·3 관련 인물의 묘역, 전쟁기념관 속 4·3 관련 인물 등도 정리했다. 4·3 사건 초기 유혈사태를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애썼던 김익렬 연대장 생가(경남 하동), 반대로 제주도민에 대한 강경진압에 나섰던 박진경 대령 동상(경남 남해) 등 4·3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의 흔적도 쫓았다.

4·3기념사업위원회는 이번에 조사한 도외 4·3 유적지 중 주요 장소 43곳을 선정해 ‘4·3이 머우꽈’ 4·3 앱에 수록했다.

4·3기념사업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전국을 서울·경기권, 대전·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등 권역별로 나눠 4·3과 연계된 장소와 인물까지 범위를 확장해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면서 “기록이 왜곡된 곳도 있고, 4·3관련 이정표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는 제주4·3연구소,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다크투어, 제주4·3문화해설사회도 함께 참여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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