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지사, 韓·美 모두의 영웅이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3.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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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연기한 드라마 실존 인물
1차 대전 당시 美 의무병으로 참전
중상자 구호 등 정부 문서로 확인
尹대통령, 4월 한미 정상회담 맞아
전용기 통해 직접 유해 봉환 검토
황기환 지사. /국가보훈처

‘1886년 4월 4일생, 미국 이름은 얼 황(Earl Whang), 미국에서 항일 운동 하며 미군 복무, 미국 시민권 획득.’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주인공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인 고(故) 황기환 애국지사(1886~1923년)가 미국 국적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기록이 발견됐다. 10대에 미국에 간 이후 주로 프랑스·영국 등 유럽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황 지사는 출생 연도나 미국 내 활동 이력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미 정부 공식 문서로 이 같은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정부는 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황 지사 순국 100년을 맞아 그의 유해를 직접 봉환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에 보관돼 있던 황 지사의 미 육군 참전 및 사망자 공식 명부를 23일(현지 시각) 입수했다. 기록에 따르면 평안남도 순천 출신인 황 지사는 1886년 4월 4일 태어났다. 18살인 190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이듬해 1905년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이 조직한 민족운동 단체인 ‘미 공립협회’의 오리건주(州) 레드랜드지부 부회장을 맡아 항일 운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속 황 지사는 한국어·영어 이름 모두 ‘유진(Eugene)’으로 쓴다. 공식 기록 확인 결과 황 지사는 미국에서 ‘얼(Earl)’이란 이름으로 살았다. 고국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의 싹이 피어나고 있던 1918년 5월 18일, 그가 ‘황 얼 기환(Whang Earl Keewhan)’이란 이름으로 미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의 육군 소속 ‘14 기지병원(당시 세인트 루크스 병원)’ 의무분견대에서 이등병(private) 계급으로 복무를 시작했고, 곧 유럽 서부 전선에 파견됐다. 그해 11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장에서 중상자들을 구호했다.

황기환 애국지사의 미군 참전자 등록 카드. 얼(Earl)이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의 육군 소속 ‘14 기지병원(당시 세인트 루크스 병원)’ 의무분견대에서 이등병(private) 계급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그의 생년월일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기록에 '4-4-86(4월 4일 1886년)'고 적혀 있다.

황 지사는 항일 운동을 하다 왜 미군에 들어갔을까. 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입대하기 9일 전 ‘누구든지 참전해 군 복무를 하면 미국민이 될 수 있다’는 징집법이 공포된 사실을 미뤄볼 때, 그가 정식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고 나서 미국에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 정부 소식통은 “한국에서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 황씨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또 하나의 조국’을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애국자”라고 했다.

황 지사는 전역 이듬해인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인 김규식 선생의 서기장으로 참석해 일제의 부당한 한국 강점을 알리는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해 10월에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있던 노동자 200여명이 영국을 거쳐 일본에 의해 강제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펼쳤다. 다음 달인 11월 홍재하 등 35명을 극적으로 구출해 프랑스로 이송시킬 수 있었다.

황 지사는 1921년 8월 워싱턴 회의(워싱턴 군축회의) 참석을 준비해달라는 이승만 대통령 부탁으로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당시 ‘신한민보’는 워싱턴 회의에 참석한 황 지사가 ‘일본신문과 지식계급에선 한국 독립을 허가할 뜻이 있다’고 연설한 한 일본 의원에게 다가가 “일본 의회에 한국 독립안을 제출할 것인가”라고 따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일본 의원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그는 1923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37세 때였다. 황 지사 사망 명부에 따르면 황 지사 아버지의 이름은 ‘Jemo’(황재모로 추정), 어머니의 이름은 ‘Kue Hein’(구혜인으로 추정)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그의 부모가 살아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부인이나 자녀는 없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지만 유족이 없어, 아무 연고 없는 뉴욕 퀸스의 공동묘지에 계속 묻혀 있었다.

황 지사 묘소는 사망한 지 85년이 지난 2008년에야 발견됐다. 뉴욕 퀸스의 한 공동묘지에 있는 높이 50㎝ 남짓한 자그마한 비석엔 ‘대한인 황긔환(황기환)지묘, 민국오년사월십팔일영면’이란 글귀가 한글로 쓰여 있다. ‘민국 오년’은 임시정부 수립 5년 차라는 뜻으로, 비석을 세운 동포들과 황 지사의 독립 염원이 이 문구에 담겼다.

그간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4주년인 오는 4월 11일 황 지사의 유해를 민간 항공기를 통해 봉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선 4월 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맞춰 미군 의장대의 조포(弔砲) 발사 및 운구 의전을 받은 뒤 윤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를 통해 직접 그의 유해를 모시는 방법도 거론된다고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독립운동을 한 황 지사가 미국을 위해서도 싸웠던 것이 확인된 만큼 양국이 함께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하는 것은 더욱 뜻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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