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은 안돼”… 나이로 연구비 차별한 교육부

김연주 기자 2023. 3. 2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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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직 후에도 연구원으로 일하는 노학자들 지원 제한
교육부 “올해부터 자리 제대로 못잡은 젊은 학자 더 지원”

교육부가 비(非)전임 교수나 박사후(後) 연구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에 올해부터 만 65세 이상 정년 퇴직한 사람은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자 노(老)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는 자리 잡지 못한 젊은 학자들을 더 지원하려는 취지로 나이에 제한을 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년이 지나도 연구 열정이 넘치는 학자가 많은데 나이 때문에 연구비를 안 주는 건 차별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이 연구비를 받았던 서울대 퇴직 교수 조모(77)씨는 “지금도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해 연구를 한다”며 “나이로 연구비를 차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모습./뉴스1

교육부는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매년 ‘창의 도전 연구 지원’ 사업 공고를 내고 선발한다. 이공계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대학의 비전임 교수나 박사후 연구원에게 연간 최대 7000만원을 1~3년간 지원한다. 올해 예산은 330억원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올해부터 이 사업 신청 자격으로 ‘만 65세 정년이 도래하지 않은 자’를 내걸었다. 기존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 정년퇴직한 교수가 다시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동안 연구재단은 지원 사업에 대체로 나이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었지만 ‘창의 도전 연구’ 사업은 예외로 하고 있었다. 창의와 도전은 나이와 무관하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제 정년 퇴임한 교수는 ‘창의 도전’ 연구비를 받기가 어려워졌다.

교육부는 “전임 교수가 되지 못한 신진 박사들은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며 “이들을 도와주자는 게 창의 도전 연구 사업의 취지”라고 했다. 이어 “정년퇴직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분들이 연구비를 받는 건 애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민원이 제기돼 나이 제한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학자들이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창의 도전 연구 기반 지원 사업은 총918명을 뽑았는데, 30대(558명)와 40대(259명)가 89%로 대부분이었고, 65세 이상은 11명(약 1.2%)이었다.

그러나 기존에 이 연구비를 통해 연구를 이어온 노교수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2010년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로 정년퇴직한 조모 전 교수는 지금도 후배 교수가 운영하는 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꾸준히 자기 연구를 해왔다. 최근 6년간 ‘창의 도전 연구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비를 받아왔다. 오는 5월이면 기존 연구비 지원 기간이 끝나 다시 3년간 연구비를 지원받으려고 최근 신청 서류를 냈다가 “나이 제한이 생겨 신청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조 교수는 “나는 연구를 워낙 좋아해서 지금도 매일 새벽 학교로 나가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할 정도로 체력에도 문제가 없고, 후배 교수와 융합 연구로 성과도 많이 올리고 있다”면서 “그런데 이런 연구자를 국가가 권장해도 시원찮은데 나이로 차별을 한다는 것은 국가적 손해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학생 수도 줄어가는 상황에서 연구에 열정적인 학자가 있다면 나이가 적든 많든 가리지 말고 국가가 지원해야지, 나이로 차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중에도 한 분야를 30~40년간 꾸준히 연구해온 경우가 많은 만큼 국가가 나이와 상관없이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자연과학과 이공계 성과는 오랜 축적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한 서울 지역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날 “젊은 연구자들이 자기는 교수도 못 되는데 좋은 시절을 보낸 선배 교수들이 정년퇴직하고 연금 받는 생활을 하면서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연구비까지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라면서 “청년 세대 상황이 안 좋으니까 대학 현장에서도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가의 세대 갈등은 커지고 있다. 지난 15년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재정이 어려워진 대학들은 교수 채용 규모를 줄였고 채용을 하더라도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조건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사립대 시간강사는 “퇴직할 때가 다 된 교수들이 연구도 제대로 안 하면서 많은 연구비를 받는 걸 보면 화가 난다”면서 “우리 세대는 교수 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고, 교수가 된다고 해도 학생 모집까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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