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90명에 고양이 70마리… 마라도서 ‘반출 작전’ 벌어졌다

마라도/구아모 기자 2023. 3.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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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멸종 위기 뿔쇠오리 지켜라
고양이 넘쳐나던 섬 가보니

국토 최남단에 있는 제주 마라도에서 지난 1일 ‘길고양이 반출 작전’이 벌어졌다. 동물 보호 단체 관계자 10명과 제주 세계유산본부 공무원 5명이 출동했다. 고양이가 나타날 것 같은 곳엔 철제 포획 틀을 설치하고,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놓아뒀다. 주민들도 협조했다. 작전 전날부터 고양이에게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았다. 굶주린 고양이들은 먹이를 보자마자 덫 안으로 속속 걸려들었다.

마라도 전체 면적은 0.3㎢. 걸어서 30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주민은 90명인데, 지난달까지 고양이 숫자가 60~70마리에 달했다. 2박 3일 총력전 끝에 42마리가 포획됐다. 이들은 제주시 조천읍 세계유산센터의 120평짜리 보호 시설로 옮겨졌다. 서귀포 남단 모슬포항에서도 배를 타고 30분은 들어가야 하는 이 작은 섬에서 어쩌다 고양이 반출 작전이 벌어졌을까.

마라도의 바닷가에서 서성이던 고양이에게 관광객이 손짓하고 있다(위). 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뿔쇠오리의 모습.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제주 야생동물연구센터

◇주민 90명 사는 섬에 고양이 70마리

지난 14일 마라도 살레덕 선착장에 내리자 수풀 속에 숨어 울음소리를 내는 노란색 줄무늬 고양이가 보였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댔다. 해물 짜장면을 파는 중식당, 횟집들이 즐비한 상가에서도 가게 앞에 우두커니 고양이들이 앉아 있었다.

이 섬에 고양이가 처음 들어온 건 10여 년 전. 곳곳에 들끓던 쥐 떼를 퇴치하기 위해서였다. 주민 송재용(76)씨는 “쓰레기 분리수거장만 가도 쥐가 100여 마리나 들끓었고, 발에 치일 정도로 사방에 쥐 천지였다”고 했다. 쥐들이 텃밭에서 기르는 농작물뿐 아니라 보일러선·전기선 등 각종 줄이란 줄은 다 갉아 먹어 주민들에겐 골칫거리였다.

결국 마을 주민 몇 사람이 제주 본섬에서 고양이를 들여왔다. 네 마리였던 고양이가 하나둘 늘어났다. 섬마을 사람들은 굶주린 고양이가 눈에 띄면 밥을 줬다. 생선 머리와 뼈, 해산물 부스러기를 먹이로 내거나, 아예 사료를 대량으로 사 놓고 고양이 밥을 챙기는 주민도 생겼다. 고양이들은 해안가에도 자주 출몰했다.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잡은 잔챙이를 얻어먹으려고 뒤에서 호시탐탐 노렸다. 섬에 들인 지 10년 만에 고양이 수는 70마리까지 불어났다.

마라도 전경. 면적 0.3㎢인 이 섬은 걸어서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생태계 파괴자 고양이?

그러자 마라도에 매년 찾아오는 각종 천연기념물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2020년 ‘제주 마라도에서 서식하는 고양이의 개체군 크기 및 행동권 추정’ 연구에서 “섬에 유입된 고양이는 외래 포식자로서 섬 고유종의 멸종이나 절멸, 생물 다양성 감소 등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고양이를 ‘100대 치명적 침입 외래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인 마라도는 호주,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까지 이어진 동아시아~대양주 경로를 지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다. 사흘간 밤낮없이 날아와 지친 철새들이 마라도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야만 남은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다. 환경부 ‘철새 지리 정보’에 따르면 마라도에서 포착된 철새는 총 103종, 4541마리(2020년 봄 기준). 슴새, 뿔쇠오리, 흰배지빠귀, 검은머리촉새, 새매, 섬개개비, 조롱이 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마라도 해안가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 야생 동물 2급인 뿔쇠오리 사체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달 24일 마라도 동편에서 뿔쇠오리 4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채 발견됐다. 뿔쇠오리는 전 세계에서 4000~6000마리만 남아 있다고 알려진 종이다. 고양이가 범인으로 지목됐고,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고양이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동물 보호 단체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뿔쇠오리 멸종엔 고양이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며 “합당한 근거도 없이 고양이의 생명을 위협할 중대한 조치를 강행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 보호 단체 49곳이 연합한 ‘철새와 고양이 보호 대책 촉구 전국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재청이 고양이가 뿔쇠오리 개체 수 감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뿔쇠오리는 번식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바다에서 보내고, 접근이 힘든 바위 절벽 틈에서 번식하기 때문에 고양이보다는 다른 동물에 의한 요인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체를 발견한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 관계자는 “사체가 찢긴 채 날개 부분과 가슴뼈, 다리 일부분만 남아 있었는데, 이 흔적이 고양이가 조류를 먹을 때 보이는 습성과 비슷하다”며 “범인은 고양이로 추정된다”고 했다. 결국 문화재청과 세계유산본부는 수의사 등 전문가, 주민, 동물 단체와 논의한 끝에 고양이를 마라도에서 반출하기로 결정했다. 주민 모임인 마라리 마을회도 고양이 반출에 동의했고, 정이 깊게 든 고양이 10여 마리는 주민들이 직접 입양하기로 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3월 말 다시 마라도를 방문해 주민들이 직접 기르는 고양이에겐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심어 관리하고, 남은 개체 수를 점검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물 단체들은 “포획돼 보호 시설로 옮겨진 고양이들이 급격한 환경 변화로 고통받지 않도록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며 케이지와 사료 등을 확보하고 있다.

마라도 전경. 면적 0.3㎢인 이 섬은 걸어서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고양이 42마리가 떠난 후

섬에는 마침내 평화가 왔을까. 마라도엔 고양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거리엔 ‘고양이 밥’이라고 적힌 놋그릇이 보였고, 사료 포대가 쌓여 있는 가게도 있었다. 고양이들은 늦은 오후, 먹이를 얻어먹으려고 거리에 나왔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주민은 “속이 불편한 사람이니까 묻지 말라”며 “아쉬우면 다시 고양이들 데려다줄 거예요?”라고 쏘아붙였다. 쥐가 다시 들끓을까 봐 걱정하는 주민도 있었다. 박이여(60)씨는 “할망들이 기른 참외 같은 것도 쥐가 다 묵어불고, 세숫비누도 네다섯 개씩 물어가드만”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고양이 때문에 속을 끓였는데 후련하다”는 반응이다. 전복, 뿔소라 등 손님에게 내어줄 해산물을 손질하던 50대 A씨는 “문어를 삶아 두면 통째로 물어서 도망가거나, 건조한 생선을 잡아채서 골칫거리였다”고 했다.

반려견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마라도엔 반려견이 총 7마리. 목줄을 묶지 않은 대형견도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천연기념물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유산본부는 마라리에 공문을 보내 “주민 주거지를 제외한 마라도 문화재보호구역에서 모든 반려견에게 목줄 등 안전 조치를 하고, 소유자 동반 없이는 반려견 출입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계자는 “목줄을 묶지 않은 대형견 4마리가 관광객들에게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결국 뿔쇠오리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대형견에게 목줄을 묶게 됐다”고 했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제주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반출된 고양이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건강 검진을 모두 마쳤고, 동물 보호 단체와 연계해 조만간 분양 절차를 통해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가정으로 분양되지 않을 경우 보호 시설에서 계속 맡을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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