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古都의 벚꽃
산책길에 이른 벚꽃을 만난 날, 분홍 꽃잎의 여린 아름다움이 종일 눈에 아른거려 잠자리에 들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고도(古都)’를 펼쳤습니다.
“무엇보다 멋진 것은 신사의 정원을 분홍빛으로 수놓은 만개한 벚꽃이었다. ‘실로 이곳의 벚꽃 외에는 교토의 봄을 대표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의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발한 벚꽃의 분홍 빛깔이 치에코의 가슴 밑바닥까지 가득 피어나는 듯했다. ‘아아, 올해도 이렇게 교토의 봄을 만났구나’ 하고 치에코는 그 자리에 선 채 미동도 않고 바라보았다.”
‘고도’는 교토를 배경으로, 갓난아기 때 헤어진 쌍둥이 자매의 엇갈린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소설은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인 치에코가 친구와 함께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의 벚꽃 구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가와바타는 “꽃을 남김없이 다 보고 싶다”는 치에코의 눈을 통해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교토의 봄 풍경을 그려냅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서쪽 회랑 입구에 서자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분홍빛 벚꽃 무리가 홀연히 봄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봄 그 자체다. 축 늘어진 가느다란 가지 끝까지 여덟 겹의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런 꽃나무 무리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기보다는 가지가 꽃들을 떠받쳐주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책갈피 속에 만개한 봄을 즐기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봅니다. 저 산의 봄빛은 아직 아련하지만, 이내 ‘고도’의 봄처럼 선명하게 요염해지겠지요. 주말에 혹 해가 나지 않더라도 아쉬워하지 마세요. 봄은 그저 봄이니까요. 가와바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꽃이 필 무렵이라 약간 흐리고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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