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서로의 상처에 ‘호~’ 불어주세요… 댓글 시인 제페토의 힐링 처방전
호 해주세요
제페토 지음·그림 | 다정한마음 | 48쪽 | 1만4000원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산동네. 할머니는 그 꼭대기 옥탑방에 산다. 이날은 금세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 잔뜩 흐렸다. 빨래를 걷어두려 나간 할머니를 향해 장독대 위 낯선 고양이가 ‘야옹야옹’ 운다. “배고픈 모양이네. 얼른 걷어놓고 먹을 걸 좀 주마.”
밥 줄 생각에 마음 급했던 할머니, 그만 돌부리에 차여 넘어지고 만다. 그때 고양이가 사뿐사뿐 할머니 곁에 다가온다. 입술을 오므리곤 무릎에 난 상처에다 입김을 분다. “호~.” 할머니는 깜짝 놀란다. “어머나 세상에, 하나도 안 아파졌네? 고양이야, 어떻게 한 거니?”
아이가 넘어지면 부모는 상처를 ‘호~’ 하고 불어주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끼리도 서로의 상처에 ‘호~’하고 불어준다. 소독약도 연고도 아닌데, 따뜻한 입김이 상처에 닿는 것만으로 어쩐지 통증도 가라앉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의 상처에 입김을 불어주는 건 처음 만난 고양이다.
할머니는 고양이에게 밥을 먹여 주고, 아픈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깨가 아프네. 호 해주세요.” 허리가 아플 때도 배가 아플 때도 고양이가 입김을 불어 주면 감쪽같이 낫는 것 같다. 고양이에게 ‘나비’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줬다. 이제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할머니의 ‘나비’다.
며칠 뒤, 이젠 자랑할 차례. 할머니는 고양이 자랑을 하려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금쪽같은 손자는 서랍에 손가락을 찧어 엉엉 우는 중이다. 설상가상 천둥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집 밖으로 도망친다. 이 신통한 고양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를 아끼고 상처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음에 난 상처도 낫게 할 수 있을까.
뉴스 댓글란에 쓴 시(詩) 같은 댓글을 모아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2016)를 펴냈던 ‘댓글 시인’ 제페토가 직접 쓰고 그린 첫 그림책이다.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 않는 그는 “오래 전 그림을 그렸고 그 뒤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도 공부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더 늦으면 영영 못할 것 같아 오래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그림책을 만들 용기를 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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