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 SVB 사태는 찻잔 속의 태풍일까?

기자 2023. 3.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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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불안 속에서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경기 침체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노 랜딩(No Landing)’에 대한 기대가 힘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SVB(실리콘밸리은행)사태’라는 뜻하지 않은 돌발 악재가 나오면서 이런 기대는 휘청거리고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SVB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에 힘입어 상당한 유동성이 IT 벤처업계로 흘러들어갔고, 이로 인해 벤처기업의 현금 보유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IT 벤처기업들의 은행 예금도 따라서 대폭 증가하는데, 이들 기업이 주로 거래하는 은행이 바로 SVB였다. SVB는 늘어난 예금을 어딘가에 투자하고 운용을 해야 했다. 문제는 IT업계에 워낙 유동성이 많이 풀려있어 대출의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투자처와 운용 방안을 찾아야 했는데, 그 대안이 국채나 안전한 모기지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채권들 역시 단기물의 경우는 워낙 금리가 낮기에 장기물을 중심으로 투자하게 된다. 결국 SVB는 단기로 받은 예금을 장기 국채 및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는 모양새가 됐다. 전형적인 장단기 미스매칭이 벌어진 셈이다.

이렇게 해도 예금이 계속 유입되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2년에 접어들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이 빨라지자 IT업계 쪽으로 들어오는 자금도 줄어들었다. 해당 기업들은 운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예금 인출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IT업계의 불황은 특정 기업에만 닥치는 게 아니라 해당 산업 전체로 확산하는 특징이 있다. SVB는 IT기업들에 특화된 은행이기에 IT업계가 어려워지자 예금자들의 예금 인출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 봉착했다. IT업계로부터 예금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예금을 인출하려면 SVB는 보유한 현금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자금 대부분은 장기 국채와 모기지 채권에 묶여 있었다. 이 경우 해당 채권을 매각해서 예금자들의 인출 요구에 응해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진다. 연준의 빠른 금리 인상에 따라 시중 금리가 급등하는데, 이때 기존의 낮은 금리 상태에서 투자했던 장기 국채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를 매각하게 되면 상당한 투자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런 손실은 은행 자본을 크게 훼손시킨다. 은행의 자본이 급격히 줄어들면 예금자들의 불안감이 커진다. 은행에서 예금을 대규모로 인출하는 뱅크런이 현실화하게 된다. SVB도 마찬가지 경로를 걸었다. 은행에 대한 신뢰가 크게 추락하면서 예금 인출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SVB는 국채를 매각하고 발생한 손실을 메우고자 유상증자를 준비했다. 하지만 한번 신뢰가 무너진 은행이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어려웠다.

SVB 파산 과정에서 보듯, 문제의 핵심은 예금 인출 사태가 닥치면 보유한 장기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매각 손실이 확정되면서 은행의 자본이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SVB와 달리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IT기업들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특정 산업이 어려움을 겪어도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예금을 유치할 수 있다. 아울러 대형 은행들은 상당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 리먼 사태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자본을 쌓아놓았다. 무엇보다 연준과 미 행정부가 한 은행의 위기가 다른 은행으로 전이할 가능성에 적극 대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SVB사태가 2008년 리먼사태처럼 대형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SVB사태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까? 대형 위기는 아닐지라도 투자 심리를 전반적으로 악화시켜 실물경기의 둔화를 촉발할 가능성은 높다. 우선 특정 산업의 부진이 SVB에서의 예금 인출 압력을 높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SVB처럼 특정 산업 혹은 특정 지역에서만 고객층을 갖는 미국의 다른 중소형 은행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들 은행은 자체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 현금을 유지하고자 대출을 줄이게 될 것이다. 이는 대출 자금이 해당 은행의 주거래 대상인 산업이나 지역으로 흘러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유동성 부족이 가시화되는 시기에 대출 부진까지 겹치면 실물경제 성장에 일정 수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지만 SVB사태가 다른 중소형 은행이나 기타 산업군 혹은 지역경제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향후 움직임에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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