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일상과 돈
지난 20일부터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팬데믹 이전으로 일상이 점차 회복되고 있지만, 돌아보면 너무도 긴 암굴의 시간이었다. 마스크 5부제, 4인 이상 집합 금지,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전례 없는 정책도 많았다. 비대면 사회를 더 삭막하게 했던 ‘마스크 난동’ 같은 일화는 어느덧 과거의 것이 됐다.
그런데 우리 삶이 회복되고 있다고, 단정하여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생활물가가 급등했고 금융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한 시기, 화가는 무엇을 주제로 그릴까? 19세기 장기 불황기에 활동한 빅터 뒤브레일의 경우, ‘돈’을 그렸다. 그는 트롱프뢰유(trompe l’oeil)라는 눈속임 기법을 통해 지폐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금융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받기도 했다. 물론 그가 위조지폐를 만든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원래 뒤브레일은 파리의 한 은행에서 일했는데, 반감을 갖고 돈을 훔쳐 달아나 화가가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뉴욕으로 옮겨간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고 귀화해, 화폐 같은 정물을 주로 그렸고 사회 비판적 논설도 발표했다.
뒤브레일이 남긴 작업은 ‘돈’이 가진 물성의 단순 재현이 아니라, 핍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혼란했던 당대의 주된 관심사이자 세속적 대상인 돈이 화면 전면에 떠오르고, 사람들은 그것의 사실성에 일순 현혹되었다가 이내 ‘가짜’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돈이 가짜이건 진짜이건, 그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이고 일상을 이루는 게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이다. 오늘날 예술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작품의 ‘진짜’ 가치를 감상자인 내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돈’과는 다르게 말이다.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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