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서울 사람으로 산다는 것

2023. 3. 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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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서울, 1987년. ⓒ김녕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봄가을이 이사철이었다. 특히 봄에는 입학이나 취업, 전학이나 전근 등이 많아 동네에서 이삿짐 가득 실은 트럭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사실 엄동설한에 이사하는 일은 보기에도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는’ 철없는 시대로 바뀌면서 봄가을 이사철 공식은 상당히 희석되었다.

70~80년대 서울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즉 서울에 내가 일할 직장과 가족과 부비며 살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출세로 향하는 출발점을 선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든 크든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 공부 가르치고 밥 굶지 않고 산다면 서민으로서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었다. 여기, 그런 꿈을 안고 서울로 진입하는 이삿짐 트럭이 있다. 그런데 볼품없는 세간들과 함께 장롱 안에 뜬금없이 남편이 앉아있다. 그리고 아내는 운전석 옆 조수석에서 유리가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트로피 하나를 안고 간다.

처음엔 가재도구처럼 실려 가는 남자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더 들여다보면 짐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장롱을 단단히 묶은 밧줄로 인해 이 남자가 감옥의 쇠창살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감옥살이처럼 답답하고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처럼 말이다. 60대 후반인 한 사진가는 지금까지 무려 35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남도의 섬에서 태어나 서울로 진출해 살면서 35번째 이사에서 비로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1987년에 이 이삿짐을 갖고 서울로 온 이 사람은 그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했을까? 살림살이 규모로 봐서는 당장은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단칸방이 월세에서 전세로 바뀌고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집을 조금씩 더 크게 늘려 이사하고 그렇게 한 단계씩 나아가지 않았을까.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처럼 부디 이들 부부가 지금은 서울드림을 이루었기를 바래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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