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서울 사람으로 산다는 것
70~80년대 서울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즉 서울에 내가 일할 직장과 가족과 부비며 살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출세로 향하는 출발점을 선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든 크든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 공부 가르치고 밥 굶지 않고 산다면 서민으로서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었다. 여기, 그런 꿈을 안고 서울로 진입하는 이삿짐 트럭이 있다. 그런데 볼품없는 세간들과 함께 장롱 안에 뜬금없이 남편이 앉아있다. 그리고 아내는 운전석 옆 조수석에서 유리가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트로피 하나를 안고 간다.
처음엔 가재도구처럼 실려 가는 남자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더 들여다보면 짐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장롱을 단단히 묶은 밧줄로 인해 이 남자가 감옥의 쇠창살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감옥살이처럼 답답하고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처럼 말이다. 60대 후반인 한 사진가는 지금까지 무려 35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남도의 섬에서 태어나 서울로 진출해 살면서 35번째 이사에서 비로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1987년에 이 이삿짐을 갖고 서울로 온 이 사람은 그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했을까? 살림살이 규모로 봐서는 당장은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단칸방이 월세에서 전세로 바뀌고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집을 조금씩 더 크게 늘려 이사하고 그렇게 한 단계씩 나아가지 않았을까.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처럼 부디 이들 부부가 지금은 서울드림을 이루었기를 바래본다.
김녕만 사진가
Copyrightⓒ중앙SUNDA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