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이어 일본서 꽃 핀 심수관 도예, 도전 정신을 빚다

입력 2023. 3. 2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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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일본 뚫어보기’
15대 심수관의 도예 작품. [사진 SUMOMO Inc.]
벚꽃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벚꽃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일본은 전국 각지에 벚꽃 명소가 많다.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이면 일기예보처럼 ‘사쿠라 전선’이라고 불리는, 전국의 개화 예상 일정을 알리는 뉴스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벚꽃 구경 계획을 잡는다. 예를 들어 나의 고향 오사카는 올해 3월 19일쯤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오사카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 중 하나는 오사카성이다. 나는 오사카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2년 유학한 다음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전공하면서 한국어로 일할 만한 곳을 찾다가 오사카성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질문에 한국어로 답하거나, 한국어 안내 방송을 하는 알바였다.

단체 투어로 온 한국 관광객들이 “풍신 수길 싫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이때 처음 한국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풍신 수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사카성은 바로 그 히데요시가 만든 성이다.

당시 알바 때문에 지겹도록 다닌 오사카성이지만 올해 초 오사카에 처음 놀러 온 친구의 아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다시 가봤다. 중학생인 친구의 아들은 역사 공부를 위해 성 안의 전시를 천천히 둘러 봤는데, 히데요시의 연표 중 임진왜란에 관한 부분을 읽고 ‘그런 일이 있었냐?’며 놀라워했다. 일본 학교에서도 임진왜란에 대해 배우긴 하지만 잊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조금만 가르쳤던 것 같다. 나도 한국에서 유학하면서 한국에서 임진왜란의 존재감과 일본에서 아는 정도의 차이가 아주 크다는 걸 알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차이도 있지만, 역사의 현장이 한국에 있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지방 여행을 다니며 임진왜란과 관련된 곳을 많이 보게 됐다.

파리 만국박람회서 세계적 유명세

현재 일본에선 정유재란 때 끌려와 ‘사쓰마야키’ 도자기 종가를 연 조선인 심당길과 400년간 가업을 이어온 그 후예들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중이다. 인터뷰중인 이가 15대 심수관이다. [사진 SUMOMO Inc.]
내게 오사카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황금 다실’이다. 온통 금색으로 장식된 다실은 히데요시가 사용했던 곳인데 실물은 소실됐고 지금의 모습은 복원된 것이다.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황금 다실이 아름답기보다 불편했다. 다도는 정신적으로 차분해지는 것을 추구한다.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검소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황금 다실은 조선을 침략한 히데요시의 ‘욕심’이 잘 드러난 상징처럼 보인다.

1월 중순 도쿄 니혼바시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열리는 ‘사쓰마야키 15대 심수관’전을 봤다. 사쓰마야키는 가고시마에서 만드는 도자기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쓰마야키 도자기 도예가 심수관(沈壽官)의 조상은 조선 출신으로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 온 심당길(沈当吉)이다.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그날은 마침 15대 심수관(12대부터 아버지께 물려받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갤러리 토크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나를 포함해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수관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시바 료타로가 쓴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시바 료타로(1923~1996)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소설가다. 『고향을 어찌 잊으리』의 모델은 14대 심수관인데 2019년에 돌아가셨다.

조선에서 도공들을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 온 데는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과 상관있다. 당시 다도가 유행했고 특히 조선의 도자기가 인기가 많았다. 심당길을 사쓰마로 끌고 온 다이묘 시마즈 요시히로는 히데요시의 다실에 자극 받아 조선 침략에 앞장섰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선 정유재란 때 끌려와 ‘사쓰마야키’ 도자기 종가를 연 조선인 심당길과 400년간 가업을 이어온 그 후예들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중이다. 인터뷰중인 이가 15대 심수관이다. [사진 SUMOMO Inc.]
15대 심수관은 갤러리 토크 때 지난해 한국 김포에 있는 조상의 묘소를 다녀온 이야기도 했다. 조상 묘소 참배는 심당길이 일본에 끌려간 이후 424년 만이라고 한다. “전혀 만난 적도 없는 먼 친척들이 반갑게 환영해줘서 당황스럽기도 했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청송 심씨 모임이었는데 일본은 그런 먼 친척들이 모일 기회가 없어서 신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상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걸 보면 심당길은 평범한 도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기사를 보니 의병 활동을 하다가 끌려갔다고 한다.

‘사쓰마야키 15대 심수관’전에 전시된 도자기들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들로 나 같은 일반인이 구매하기는 어려운 비싼 가격이 붙어 있었다. 15대 심수관은 “여기 전시된 작품들 이전에 훨씬 많은 실패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마 온도를 올릴 때 더 이상 올리면 도자기들이 깨질 수도 있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깨지기 어려운 디자인으로 만들거나 온도를 더 이상 안 올리는 선택도 있지만 그러면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수많은 도전 과정에서 깨진 작품이 훨씬 많지만, 그 실패가 있었기에 새로운 작품이 나온 것이라면서 그는 “지금의 일본은 모든 면에서 ‘로 리스크 로 리턴(low-risk low-return)’, 즉 도전을 안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로 리스크 로 리턴은 위험성이 낮은 만큼 수익성도 낮다는 투자 관련 용어인데 일본의 현황을 잘 지적한 말로 느껴졌다.

일본은 경제 침체가 오래되고 고령화의 영향도 커서 ‘일단 리스크는 피하자’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15대 심수관이 한 이야기를 일본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변호사 친구한테 했더니 크게 공감했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외국계 기업에서는 법적으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설명하면 어떻게 그 리스크를 안고 프로젝트를 실현할지 다시 생각하지만, 일본 기업이라면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차라리 프로젝트를 포기할 거라고 했다.

노무현, 고이즈미 회담 후 심수관요 방문

일본 가고시마현 히오키시에 있는 심수관요. [사진 SUMOMO Inc.]
조선에서 끌려온 심당길이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된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지만, 15대까지 대대로 400년 이상 도예 기술을 닦아온 심수관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를 오랫동안 깊이 파는 일본적인 성향과 한국의 도전 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2월에는 남원에도 가봤다. ‘심수관 도예 전시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왜 남원이냐고 하면, 심당길과 도공들이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납치됐기 때문이다. 전시는 몇 대에 걸친 심수관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사쓰마야키 도자기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그 설명에 의하면 사쓰마야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주요 수출품이 된 계기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였다고 한다.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시대가 열리는 시기다. 그 중심에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있었다.

전시 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그리고 15대 심수관이 같이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2004년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때 찍은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심수관요도 방문했었다. 그만큼 심수관이라는 존재는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심수관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 전해지고 일본에서 발전해온 도예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날 15대 심수관의 토크도 촬영했다. 한일 양국에서 개봉할 예정으로 한국에서도 촬영을 진행했는데, 한국의 유명 도예가 신경균 작가를 인터뷰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 배급과 한일 합작 영화 제작 등으로 오랫동안 한일 영화계 가교 역할을 해온 재일코리안 이봉우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일 문화 교류가 정치적인 이유로 어려워졌는데 원래 가깝고 서로 뒤섞인 문화 풍토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최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다. 과거의 문제를 특히 일본은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더 이상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서로 지혜롭게 다가갔으면 한다. 심수관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임진왜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에게 그 역사를 알리는 역할도 하는 동시에 두 나라의 문화적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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