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마음을 열고 완연한 봄을 즐기자

2023. 3. 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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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처녀가 초록 풀밭 위를 걸어가고 있다.

머리를 틀어 올려 장식한 모습을 보니 단단히 벼르고 나들이 나온 것 같다.

봄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가볍고 쾌활하게 걸어가는 모습에선 흥겨운 콧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뒷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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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처녀가 초록 풀밭 위를 걸어가고 있다. 머리를 틀어 올려 장식한 모습을 보니 단단히 벼르고 나들이 나온 것 같다. 봄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가볍고 쾌활하게 걸어가는 모습에선 흥겨운 콧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한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했는지 잠시 멈춰서 두 손가락으로 꽃을 따고 있다. 다른 손은 꽃이 담긴 광주리를 안고 있다.
‘꽃을 따는 처녀’ 나폴리, 국립박물관
로마시대 도시인 폼페이 유적에 있는 벽화다. 폼페이는 1세기쯤 나폴리만 근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묻혔던 로마의 작은 도시이다. 18세기쯤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했고, 뒤이어 나폴리 왕국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로마시대 생활 모습과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벽화와 모자이크화가 주목을 받았다. 폼페이의 부유한 사람들이 집안을 벽화나 모자이크화로 장식해서 생활의 여유를 과시했는데, 이 그림은 그중 하나다.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뒷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정면의 모습을 모든 동작에서 중심으로 삼았던 고대 시대 그림의 관습에서 벗어났음을 알려 준다. 화가들이 다양한 자세와 모습에 서서히 눈을 뜨면서 그림이 좀 더 풍성해졌다. 부드럽고 쾌활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곡선 흐름을 강조했고, 파스텔톤의 색을 사용해서 주변의 봄기운도 느끼게 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풀과 나무가 움트기 시작하면서 초록빛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살아나고 있다.

2000년도 더 지난 벽화인데 지금 봐도 생생한 느낌을 준다. 시간과 장소가 달라도 계절의 변화와 계절을 즐기는 사람들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입춘이 지난 지금 계절에 꼭 맞는 그림이다.

대부분의 일상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거리에 다시 활기가 넘친다. 포근한 날씨와 봄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마주하는 사람들 표정도 정겹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마스크에 가린 얼굴만큼 마음도 가려졌던 터, 이젠 서로의 마음도 열고 완연한 봄을 만끽해보자.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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