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지적이 지적질 되지 않으려면

2023. 3. 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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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분이 쓴 식당 휘호나
동네 일식집 간판을 보다가
오류 발견하고 일삼아 지적
가끔은 눈감아주는 여유 필요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나는 비교적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고, 깔끔하며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비교적 깐깐한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변의 이런저런 오류나 잘못들이 남들보다 빠르게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걷다 보면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에서도 오류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고, 때로는 공익광고 포스터에서도 오류들을 잘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틀린 것을 지인에서 알려주거나, 때로는 관계자에게 그런 오류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만큼 성격이 까칠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잘못된 오류가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동해의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유명 횟집에 꽤 유명하고 높으신 분이 다녀가며 그 횟집의 상호를 휘호로 남겼는데 그것을 커다란 액자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 글쎄 한글 하나가 완전히 틀린 글자였다. 그 휘호를 남기신 분이 너무 유명한 분이라 나는 잠시 충격에 휩싸였다. 그냥 휴대전화기로 그 액자를 사진 찍어 가끔 사석에서 재미 삼아 지인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언젠가 학교 근처의 일식집에 갔다가 그곳의 한글 간판 아래 오른쪽에 작게 쓰인 영문 표기의 철자 오류가 그냥 눈에 들어왔다. 일식집의 사장님에게 그 오류를 말해주었는데 그것이 수정되는 데 무려 10개월 이상 걸리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예로, 우리 학교 교내에 카페가 하나 새로 입점하며 상호를 희랍어에서 가져다 썼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희랍어를 배우지 않았지만, 인문사회계열의 학생들은 비교적 여러 철학 개념의 희랍어를 알게 되고, 이공계열의 학생들은 수식의 기호에 희랍어 철자들을 많이 사용하기에 희랍어 단어를 접하면 뜻은 몰라도 글자 하나하나는 어떤 글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그 카페의 상호 희랍어 철자의 치명적인 오류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무관심하게 지나치기에는 신경이 쓰여, 관계자에게 희랍어 철자 오류를 알려주었다. 철자 오류가 왜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 나 나름의 판단을 곁들여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몇 달이 지나도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당시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계신 미국인 교수 신부님에게 우연한 기회에 그 철자 오류에 대해 언급하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하며 내가 잘못 보았을 것이라 했다. 몇 주가 지나 그 교수 신부님이 오류를 직접 확인하고는 '학교 망신'이라면서 우리 학교에 외국인이 얼마나 많이 방문하는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그냥 내버려두고 있냐고 흥분하며 나에게 하소연하셨다. 나는 그 카페의 사장님뿐 아니라, 학교의 주요 관계자들에게 이 오류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제안했지만, 2년이 넘게 지나 학교에서 나갈 때까지 그 오류는 시정되지 않았다. 카페 관계자의 변명은 이미 인쇄된 여러 보조 물품들, 예를 들어 종이컵, 냅킨 등 오류 수정에 따르는 소요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카페가 문을 닫고, 다른 카페가 들어서 오류 문제는 없어졌지만, 내 마음은 늘 무언가 불편했다.

여행사 가이드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은 선생님 단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르치는 것이 일이다 보니 여행지에 올 때면 알고 있는 지식에 질문도 많으며 가이드의 설명에 지적질 아닌 지적을 하고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나 또한 정확한 성격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온 교수로서의 습관이 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담으로 때로는 농담으로 건네는 지적이 지적질이 되지 않으려면, 남들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들여다본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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