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완의 논점] '아이를 낳는 이유'

박제완 기자(greenpea94@mk.co.kr) 2023. 3.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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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사망률 1000명당 2.1명을 목표로 산부인과 전문의, 조산사 인력을 늘리고 마취과 전문의 등 필수 의료진을 추가로 고용한다."

"서른 전에 아이 셋을 낳은 남자의 병역을 면제하는 정책을 검토하겠다."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검토하겠다."

전자는 영국 정부가 2021년 7월 내놓은 정책, 후자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저출생 대책과 지난 1월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내놨던 아이디어다. 얼핏 비슷한 저출생 대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책 수혜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뜯어보면 차이점이 보인다. 영국의 정책은 정책 수혜자가 아이인 반면, 한국의 정책은 아이를 낳은 부모가 받는 혜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지난 12일부터 22일까지 오세훈 서울시장을 따라 영국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 독일 함부르크, 덴마크 코펜하겐 4곳을 방문했다. 출장의 주된 목적은 4개국의 강변 개발 방식을 벤치마크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유럽 각국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돋보였다. 특히 부모들이 저마다 자전거 앞에 달린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런던에서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아이가 시끄럽게 울어도 불편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승객들의 모습이 한국의 노키즈존과 비교됐다.

나는 유럽과 한국의 차이점이 결국 아이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느냐, 수단이 되느냐의 차이라고 본다. 합계출산율이 1970년에서 1990년까지 0.5명 줄어들면서 유럽 첫 인구 감소 국가라는 오명을 썼던 프랑스는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모든 의료 비용을 100% 정부에서 환급해준다. 불임 치료비 역시 무료다. 탁아소, 유치원, 대학까지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라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영국은 교육에 방점을 뒀다. 영국 전역의 보육센터에서는 종일제 교육과 보호를 제공한다. 특히 영국은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등 문화시설들의 입장료를 없앴다. "도시 전체가 아이들의 교육의 장이 된다"는 목표다. 케임브리지, 옥스퍼드에서 출간하는 교재들은 세계에서 수입해 쓸 정도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일단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고, 부모가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좋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 아이의 행복 자체가 목표인 유럽이 제공하는 출생 정책이다. 이에 반해 위에서 제시한 한국의 저출생 대책은 아이를 수단으로만 바라본다는 인상이 든다. 본인의 군 면제를 위해 30대 전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는 식의 인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도대체 뭐가 좋은가."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로 돈, 집, 자기계발 등을 줄줄 꿸 수 있지만, 아이를 낳을 뚜렷한 동기는 없지 않으냐는 내 질문에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한 취재원은 이렇게 답했다. "딱 잘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묻는 것보다, 아이를 낳는 이유를 묻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 우리의 저출생 대책은 '아이를 낳을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공하고 있는가. "아이를 낳아도 손해는 아니다"라는 식의 접근 말고 말이다.

[박제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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