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검정고무신' 故 이우영 작가와 저작권 분쟁

2023. 3.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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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관행·법이 부재하면
창작자·제작사 간의 계약은
불공정 위험에 항시적 노출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별세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우영 작가는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창작하고 그렸지만, 출판사에 관련 권리를 양도(위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로 인해 자신이 그린 캐릭터에 대한 권리를 사실상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저작권 분쟁에 휘말려 있던 터였다. 자신의 창작물을 빼앗겼다고 느꼈을 창작자의 상처랄 것을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그와 비슷한 경우로는 대법원 판결까지 난 '구름빵' 사건이 있었다. 구름빵을 창작한 백희나 작가 또한 출판사에 사실상 저작권(저작재산권)을 통째로 양도하는 계약을 맺는 바람에, 관련된 권리를 거의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출판사는 수천억 원대 이익을 얻은 반면, 백희나 작가가 얻은 수익은 처음 저작물을 넘기면서 받은 1000만~2000만원 정도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작자가 저작권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흔히 저작권 계약은 사적 계약이고, 계약서에 서명한 작가 잘못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애초에 그렇게 저작권을 통째로 양도하는 계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작가와 출판사나 제작사 등의 관계가 항상 대등한 주체 간의 계약인지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창작자들, 특히 데뷔를 간절히 희망하거나 당장 생활비가 급한 작가들이라면,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너무나 절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궁박' 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출판사나 제작사에서 저작권 전부를 가져오는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이를 거절하거나 수정할 엄두를 못 내는 작가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몇백만 원의 목돈을 준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혹은 처음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고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 앞에서 저작권 이야기 등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해리포터'를 쓴 조앤 K 롤링이나 '미저리' 등을 쓴 스티븐 킹만 하더라도, 수십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출판사에서 이런 작가들의 절실함을 간파하여, 모든 저작권을 양도받는 계약을 체결했다면, 지금쯤 롤링이나 킹도 영화나 번역서 등으로부터 아무런 수익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이를 공정하거나 정당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는 이런 불공정 계약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저작권 양도의 경우 최대 5년이나 10년 정도만 유효한 법조항을 두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계약서에 '저작권 전부 양도'라는 딱 한 줄이 어디 숨겨져 있더라도, 거기에 서명만 하면, 창작자가 저작권을 다 빼앗겨버릴 수 있다. 이 경우 심지어 자기 책이 외국에서 번역되더라도 아무런 수익을 분배받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약관규제법처럼 창작자를 보호하는 저작권규제법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다. 창작자 개인이 기업인 제작사 등과의 관계에서 을이 될 수 있는 경우가 너무 많고, 법의 보호 없이는 공정한 계약이 되기 어렵다. 아이돌 지망생과 거대 기획사의 관계라든지, 배우와 큰 극단의 관계, 가수와 음반 제작사 등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입장에 있는 개인들이, 창작자들이, 예술가들이 참으로 많다.

이는 꼭 누가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정한 관행이나 법의 부재에서 오는 측면이 크다. 불공정함이라는 기준과 원칙이 없는 시장에서,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더 큰 이익이라는 유혹에 휘둘릴 것이다. 그럴 때는 공정거래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처럼 법이 이런 관행과 윤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모두를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정당하고 공정한 주체들로 만들어준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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