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쇼핑몰은 진화한다. 인간의 역사는 몰의 역사다" 세계적인 소비심리 분석가가 말하는 '몰'의 미래
19세기 중반 사상가 발터 베냐민은 줄지어 늘어선 상가 양쪽을 차양으로 연결해서 비 오는 날도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든 아케이드(Arcade)를 보고 이런 말을 남긴다. "자본주의는 꿈을 수반한 새로운 잠이다. 이것은 이제 유럽을 덮친 하나의 자연 현상이다. 이러한 잠 속에서 신화적 힘들이 재활성화되고 있다."
베냐민은 유럽 곳곳에 새롭게 생기기 시작한 회랑식 상가를 배회하는 군중들을 보면서 집단 무의식을 발견했다. 그는 군중의 욕망이 근대의 본질이 될 것이라는 걸 예견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른바 '몰링(Malling)'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쇼핑 공간은 아케이드를 뛰어넘어 엄청난 복합공간으로 진화했다. 사람들은 쇼핑만을 위해 쇼핑센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식사도 하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쇼핑몰을 찾는다.
세계적인 소비심리 분석가 파코 언더힐은 "몰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특정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상황뿐 아니라 지리학적 특성, 심리 상태 그리고 취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며 "몰에는 인류 상거래 역사가 그대로 농축돼 있다"고 말한다.
몰(Mall)이 소비의 중심에 선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몰은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이 원하는 원스톱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먹고 입을 것을 구하는 단순한 생계 행위인 쇼핑을 여가의 공간으로 확장시켜 준 것이다.
몰은 또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는 커뮤니티센터 기능을 한다. 과거 광장이 했던 기능을 몰이 해주고 있다. 학교 강당이나 마을회관, 장이 서는 날 풀밭에서 이루어졌을 일들이 몰에서 벌어지고 있다. 몰은 개성 있는 쇼핑을 가능하게 해준다. 필요한 물건만 사서 빨리 나가는 곳이 아니라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언더힐은 몰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지금의 몰이 쇼핑의 궁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인터넷 쇼핑 등 새로운 차원의 쇼핑문화가 생겨나고 있어 언젠가는 또 다른 형태의 몰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더힐은 몰의 지배는 여전할 것이라 말한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라. 오프라인 쇼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충분히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은 그저 물건을 쌓아두고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간호사나 건설 현장의 관리자, 소방관과 경찰처럼 사무실에서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전해 받기 어려운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더 나은 아날로그'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사실 우리 시대의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문제가 생기면 매장에 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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