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긴장된다, 오래 기억된다 … 미약한 존재의 강한 힘
96생 최지원작가·디스위켄드룸
박제된 동물이나 나무 조각품
작가 부친이 사온 기념품들로
멈춰버린 어느 한순간을 표현
죽음 거스르는 생명력 느껴져
한남동 갤러리 디스위켄드룸
내달 8일까지 대형 유화 전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가. 창틀에 걸린 블라인드 아래 방 안을 응시하는 여인의 얼굴이 있다. 무표정한 그녀의 피부는 반질반질 매끈한 도자기 재질이다. 이 장면을 보며 살짝 긴장하게 된다. 1996년생 작가 최지원의 신작 '블루문'(2023)이다.
그의 회화는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공간이 확장된 변화를 담은 대형 유화들을 모은 두 번째 개인전 '채집된 방(Collecting Chamber)'이 한남동 갤러리 디스위켄드룸에서 4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강력한 조형언어의 근본인 도자 인형에 대해 최지원은 "항상 대상의 표면을 스캔하듯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특히 매끄러운 표면을 바라볼 때 회화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작동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단독주택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장식품인 박제된 동물이나 나무 조각품 등의 물건이 대거 등장했다. 죽은 말벌이나 나방, 거미 등 마른 곤충은 실제 작가가 집의 창틀이나 유리화병 속에서 발견한 것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채집해서 그렸다. 기억의 파편이자 생명이 없는 미약한 존재들이 의외로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최지원은 "첫 개인전에서 도자 인형 중심으로 다양한 표현을 했다면 이번에는 과거 살던 공간에 다시 돌아온 개인적 변화를 통해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오게 돼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 제목인 '챔버'란 진공된, 밀폐된 공간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출장에서 사 온 조각품들은 멈춰버린 순간을 표현하기 적절한 '부장품'이 됐다.
작가는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는 문화에 흥미를 느낀다"며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현세에 온 힘을 다해 만든 공간이 내세를 위한 것이고 죽음과 활기찬 생명력이 함께 역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극사실 회화처럼 질감 표현이 강하게 묘사된 부분과 면과 면의 경계를 희미하게 대충 표현한 부분이 한 화면에서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매력적이다.
전시된 작품끼리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한 배치도 흥미롭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블라인드나 창문, 문, 액자, 거울 등 다양한 사각형의 프레임을 통해 안과 밖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면 다른 그림이 연결되어 나오는 식이다.
김나형 디스위켄드룸 대표는 "대학생들 단체전에서 돋보이는 조형언어로 발굴했는데 이미 팬덤이 상당하다"며 "옷이나 도자기 질감 등 기교가 빼어난 작가임이 분명하면서도 꾸준히 회화 실험을 이어가 앞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올해 베를린과 상하이 단체전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5년 개관한 디스위켄드룸은 김진희, 지희킴 등 1980~1990년대생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미술시장 인큐베이터 역할에 적극적이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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