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봄의 生氣 충만한 산길을 걷다

김윤세 2023. 3. 24. 16: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필봉산 정상에서 바라다보이는 산청읍 전경.

묘년에 접어들어 지난 1월에 여섯 차례, 2월에 일곱 차례의 산행을 한 데 이어 3월 4일에는 산청의 필봉산, 5일에는 지리산 자락 끝 줄기에 우뚝 솟은 구례 지초봉(600m)을 등반했다.

'겨우내 칩거에 들어가 참선 삼매에 들었던 만물이 봄의 생기生氣에 의해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驚蟄을 이틀 앞둔 시기인지라 온 산하 대지는 벌써 봄의 향연饗宴을 준비하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 기온에 실려 간간이 불어오는 봄바람은 온화한 어머니의 품속을 연상케 하는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아내(우성숙)와 함께 함양 인산가에서 승용차로 출발해 24번국도를 이용해 함양읍 남산을 지나 유림면 소재지에서 엄천강을 건너 산청 금서면 동의보감촌 무릉교 부근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정오였다.

회사에서 제조 생산한 농주 탁여현 600mL와 월남 땅콩, 생수 500mL 등을 담은 8kg 남짓 무게의 배낭을 둘러메고 도로를 따라 필봉산 등산로 입구로 오르다가 그 부근에 있는 약수터에서 숨을 고르고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 다음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초입에 세워놓은 '필봉산 정상 1.10km' 이정표를 지나 사람 키 높이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건강 세상 이정표-인산가'라고 쓴 노란색 바탕의 리본을 다시 더 잘 보이도록 고쳐맨 뒤 점점 가팔라지는 산 비탈길을 오르는데 어제 저녁의 과음 탓인지 오늘따라 힘들기도 하려니와 여간 숨찬 게 아니다.

쉬엄쉬엄 50분가량 오르니 등산로 입구부터 800여 m 거리의 고개, 즉 왕산과 필봉산을 잇는 능선의 가장 잘록한 곳에 자리한 여우재에 당도해 잠시 서서 숨 고르기를 한 뒤 다시 길을 재촉해 능선길 300여 m를 더 걸어서 마침내 필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부위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즐비해 조심스레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주변 산들의 풍광과 경호강으로 둘러싸인 산청 읍내를 조망하고는 아내와 함께 정상에 오른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진을 셀카로 찍었다.

해발고도 858.2m 높이의 필봉산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계속 올라오는데다 그리 너르지도 않은지라 조금 걸어 내려가서 산청 농공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탁 트인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150mL 놋그릇 술잔에 알코올도수 15도의 농주-탁여현을 가득 부어 두 사람 모두 단숨에 들이켰다.

탁여현 한 잔과 함께 봄날의 생기를 듬뿍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동쪽으로 나 있는 하산길에 나선다.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 데다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가 강구산으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고개에 당도해 동의보감촌 방향 이정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편안한 산길을 30여 분 걸어서 무릉교를 지나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오니 산행의 총거리는 4.2km이고 소요 시간은 3시간 45분이다.

봄의 생기가 충만한 경칩 절후의 꽃길 산행은 어느 계절보다도 따뜻한 기운이 감싸고 형형색색의 화사한 빛깔로 물든 별천지를 거니는, 특별한 시간여행이었다.

봄날 산행의 이런 분위기를 잘 표현한 시가 떠오른다.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 선사(1376~1433)의 '길 가는 도중에 짓다途中作'라는 시이다.

구룡산 밑으로 난 한줄기 산길

끝없이 펼쳐진 봄빛으로 눈이 부셔라

화창한 봄날, 하얀 꽃, 빨간 꽃

형형색색으로 피어나 미소 짓는 산길을 간다

고요한 별천지를 간다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이 반기는 곳

가다가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면서

말없이 걷고 또 걷는다

九龍山下一條路구룡산하일조로

無限春光煥目前무한춘광환목전

紅白花開山影裏홍백화개산영리

行行觀地又觀天행행관지우관천

함허 선사는 어느 봄날, 온 산을 연둣빛으로 물들이면서 형형색색의 꽃으로 미소 지으며 소리 없는 법문法門을 들려주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청정 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을 만난다. 이어서 첩첩의 산봉우리 사이를 울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말해 주는 팔만사천 법문을 듣는다. 그것은 바로 아득한 옛적 영산靈山회상에서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사자獅子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광설長廣舌이요, 사자후獅子吼이다,

조선 왕조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말미암아 당대 불교계의 사부대중 모두가 숨 막히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며 다같이 눈물을 흘리던 암울한 시대이지만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 자연계의 별천지로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산청 필봉산 정상에서 아내와 함께.

선사는 충북 충주 출신으로, 21세에 관악산 의상암에서 스님이 되었으며, 이듬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머물던 무학無學 왕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공부한 뒤 그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세종 13년(1431), 경북 문경의 희양산 봉암사를 중수했으며 세종 15년, 그곳에서 나이 58세(법랍 38)로 세연世緣을 마치고 입적했다.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로 귀촌해 사는 윤석구 선생 부부가 몇 달째 산청 읍내 경호강 강가의 별장에 머무는데 '연어 초밥 저녁 식사'에 초대해 시간 맞춰 그곳에 가느라 서둘러 차를 몰아 약속장소로 갔다.

약속장소에는 함양 휴천면 살구쟁이마을로 귀촌해 손수 집을 짓고 사는 이를 비롯해 마천면 촉동마을 사람 등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합류해 윤 선생 부부가 직접 만든 연어 초밥을 안주로, 탁여현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신선들 머무는 선계인 산에서 내려와 속세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짙은 어둠이 내려와 세상을 감싼다.

이제 우거寓居로 돌아가야 할 시간, 식사 자리를 물리고 자리를 옮겨 다실에 모여 발효차를 마신 뒤 승용차를 이용해 인산동천仁山洞天으로 돌아왔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