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연금술사’, 연매출 30억 버섯 전문가로 새출발

한겨레 2023. 3. 24.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 ⑥ 은행 명예퇴직 뒤 버섯유통업 하는 ㈜넥세스 안승현 대표
안승현 ㈜넥세스 대표.

중소기업 대표가 이사회를 통해 자리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안승현(58)씨는 2020년에 자본금 1천만원으로 버섯유통업을 하는 ㈜넥세스를 창업했고, 지난해 추정 매출액 30억원을 올렸다. 굴곡진 그의 창업 스토리가 궁금해졌다.파생상품 다루며 ‘ 금융 달인’ 소리 듣고

지점장 거친 뒤인 52살에 명예퇴직

퇴직금 3억 중소기업에 투자했지만

새 투자자에 의해 대표서 쫓겨나기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해 지점에서 2년간 일했다. 그 뒤 본점으로 옮겨 외환업무를 담당했다. 입사 9년 차가 됐을 때, 사내에 카이스트 석사과정 연수자 선발공고가 떴다. 2년간 공부만 하는 조건인데 경쟁률이 30:1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가 선발돼 연수를 가게 됐다. 2년 중 한 학기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연수를 마치고 본점에서 파생상품(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의 가치변동에 따라 투자하는 상품) 전문가로 일하게 됐다. 당시 언론은 그를 ‘금융시장의 연금술사’ ‘금융의 달인’으로 소개했다.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그도 승진을 위해선 지점장 업무를 거쳐야 했다.

2013년 실적이 좋은 지점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 지점은 영업 목표 또한 높았다. 그는 지점 업무에 익숙지 않았고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았다. 3년이 지나고 회사는 그를 ‘후선 배치’로 돌려서 개인 목표를 부여했다. ‘후선 배치’는 패자부활전 같은 기회인데 대신 급여는 지점장 때보다 줄었다.

소호사무실 복도.

지점장 재직 때 그는 기업 대출을 위해 버섯 농장에 실사를 나간 일이 있었다. 실사하면서 버섯 산업의 사업성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후선에 배치되고 마침 지인이 버섯 관련업을 시작한다며 그에게 투자를 권했다. 그도 사업성이 좋아 보여 3천만원을 투자했다.

후선 배치된 뒤 목표 달성을 못하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때 마침 회사에 희망퇴직 공고가 났다. ‘후선 배치’ 경우에도 지점장 급여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의 나이 52살이었다.

2017년 초 갑자기 결정한 은퇴이다보니, 그는 은퇴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지역 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교육’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처가가 지방에 땅이 있어 농사를 도와주던 차였다.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 같아 3월부터 11월까지 주 1회씩 총 100시간의 수업을 들었다. 과정을 이수하면 농지 구매 등의 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사무실 공유 공간의 복사기·컴퓨터·스캐너 등.

그는 “돌이켜보니 그때 교육이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귀농귀촌에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들이 와서 농사 외적인 부분에도 조언해줬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단다. 지난해에 처가 땅에 고추 2천 주를 심었는데, 손에 들어온 돈은 고작 300만원뿐이었다. 기름값도 안 되는 돈이다. 땅을 놀릴 수 없어 농사지었지만, 시설농이 아니고서는 농사로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2017년 7월께, 투자를 권한 지인이 그에게 대표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했다. 재무관리나 회계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단다. 그는 대표직을 맡고 퇴직자금 3억원을 회사에 투자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지분 절반을 넘기는 조건으로 외부 투자를 새롭게 받게 되었다. 넉 달 뒤 이사회가 소집됐는데 새 투자자는 자금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손실이 발생했다며 그와 지인을 해임했다. 그래도 새 경영진이 회사 경영을 잘했다면 투자금 3억원은 잃지 않았을 텐데, 결국 회사는 망했고 두 사람은 투자금을 날렸다.

일이 없는 그와 지인은 매일 만났다. 만나서 서로를 탓하진 않았을까? “바보 같다는 자책은 했지만, 서로를 탓하진 않았어요. 했던 사업이라 사업성이 있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투자자 리스크만 없으면 사업이 잘될 거 같았어요.”

사무실에 있는 관련 책자들.

2020년 자본금 1천만원으로 지인과 ㈜넥세스를 창업했다. 직원 없이 둘이 일해 비용을 아꼈다. 신용보증기금(이하 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받아 2억원의 대출도 받았다. 금리는 처음에는 2.5%였는데 지금은 금리가 올라 5%다. 회사 사무실은 학교법인 ‘종근당고촌학원’이 운영하는 소호사무실이다.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사무실은 월세와 관리비를 포함해 월 50만원을 냈는데 지금은 35만원으로 줄었다. 회의실과 복사기·팩스 등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고정비용을 줄인 덕에 회사가 초기에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됐다.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신중해야 해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잖아요.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은 차라리 리스크가 적어요. 귀농의 어려움은 디테일에 숨어 있어 일반인이 모르는 게 많죠. 귀농한 분 중 표고버섯 농사짓는 분이 많아요. 초기비용이 적게 들고 판매가격이 좋아서 도전을 많이 하는데, 자리 잡기 힘들어요. 기술도 있어야 하고 배지(버섯을 키우기 위한 영양물)도 사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죠.”

㈜넥세스 사무실이 있는 종근당고촌학원 소호사무실 건물 입구.

그는 신용 심사를 해준 보증기금에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물론 은행보다는 문턱이 낮지만 여전히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워요. 저는 보증기금이 안 떼일 생각으로 심사하면 안 된다고 봐요. 대출받은 업체 10개 중 2~3개 업체에는 떼일 수 있다는 공익적 마인드로 심사해서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어요.”

은행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은퇴 뒤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 많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처음엔 지점장 때 수준으로 매달 꼬박꼬박 돈을 쓰는 거예요. 아무리 남들보다 퇴직금을 많이 받아도 그렇게 몇 년 지나면 돈이 다 없어지겠다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지출을 줄이느라 고생 좀 했죠.”

은행에서 파생상품전문가로 일할 정도로 신금융기법을 잘 알던 안 대표도 경영권을 빼앗으려 작정하고 달려든 사람들을 피하진 못했다. 은퇴 초반의 고난은 그가 지금의 회사를 운영할 때 더 단단하게 내실을 챙기도록 했다. 그 어렵다는 동업의 성공 요인이 뭐냐는 질문에 “마음이 잘 맞고 욕심이 없는 동업자를 만난 덕”이라고 그가 말하며 웃었다. 은행 업무를 통해 익힌 전문 지식과 낙천적인 안 대표의 성격은, 실패를 딛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힘이 됐다. 인터뷰를 마친 안승현 대표는 거래처를 가야 한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98@naver.com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