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 못해 후퇴한 탄소중립 기본계획

2023. 3. 2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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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 낮춰…글로벌 흐름에 역행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바로 전날 탄소예산이 소진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는데 우리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은 그 기간까지 탄소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온실가스 감축 부담도, 기후위기의 위험도, 현 정부 이후로 최대한 미룬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3월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공청회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성동훈기자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상임활동가는 지난 3월 21일 정부가 공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총평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2020년 3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2021년 9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으로 제정)과 시행령,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기후변화로부터 미래세대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크게 부족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국내 첫 기후소송을 제기했다. 만 3년이 지났지만,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김보림 활동가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한 것으로밖엔 들리지 않는다. 헌법소원 판결의 무게감이 더 커진 상황이다. 위헌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을 더 집중해서 펼치겠다”라고 덧붙였다.

‘과학’ 강조하면서 과학계 경고 무시

IPCC는 지난 3월 20일 발표한 제6차 기후변화평가 종합보고서(AR6 SYR)에서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로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현재(2011~202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1.09℃ 상승했다고 밝혔다. 육지 온도 상승만 보면 2℃에 육박한다.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가 많은 열을 흡수하면서 그나마 평균값을 줄였다.

종합보고서는 지구온난화를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2020년 이후 남아 있는 탄소예산은 500Gt(5000억t)이라고 밝혔다. 그것으로도 절반의 확률로 1.5℃ 제한에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탄소예산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특정 온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말한다. 1850년 이후 2019년까지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은 2400Gt으로 1.5℃ 제한에 필요한 총 탄소예산(2900Gt)의 약 5분의 4를 이미 다 써버렸다.

IPCC는 이번 종합보고서에서 세대 간 불평등을 특히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현재의 기후변화에 가장 책임이 덜한 202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을 가장 크게 경험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높은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로 갈 경우 이들이 80세가 될 때 지구 표면 온도 상승은 4~5℃에 육박하게 된다. IPCC는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2040년 안에 1.5℃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와 미래세대가 경험할 온도 상승의 정도는 지금 그리고 가까운 장래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차 종합보고서가 향후 10년의 단기적 정책 대응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IPCC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기후 대응은 느긋하다 못해 후퇴 중이다. 정부는 지난 3월 21일 공개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에서 2030년 산업부문의 온실가스감축목표치를 14.5%에서 11.4%로 낮췄다. 지난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이전 정부가 수립했던 30.2%에서 21.6%로 대폭 낮췄는데, 이번 기본계획에서도 변동은 없었다. 다만 산업부문 감축량이 줄면서 부족한 감축분의 일부를 태양광·풍력으로 채우겠다며 ‘+α’를 붙였다.

책임 큰 산업계 감축 부담 오히려 줄어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기본계획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20년을 계획기간으로 부문별·연도별 감축 대책이 담겨야 한다. 하지만 이번 기본계획에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만 나오고 있고, 2042년까지의 감축목표는 제시되지 않았다. 내용을 봐도 전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에 비해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억3000만t으로 기존보다 810만t 늘어났다. 부족한 감축량의 절반인 400만t을 전환(발전) 부문에서, 나머지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활용, 국제 감축 등으로 돌렸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정부는 실행 가능성과 이행을 강조했지만, 기본계획의 정부안을 보면 상충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정부안은 현 정부 임기 내인 2023~2027년에는 약 5000만t, 다음 정부 시기에는 약 1억5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연도별 감축 계획을 담고 있다. 온실가스 총 감축량의 75%를 2027년 이후에 몰아넣으면서 차기 정부에 감축 부담을 전가했다. 수송부문을 제외하면 부문별 감축량도 현 정부 이후로 감축량이 몰려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3월 23일 열린 토론회에서 “IPCC는 2030년까지 얼마나 급격히 줄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우린 감축 부담을 후반에 집중시킨 ‘볼록한 감축경로’를 갖고 있다”면서 “선형 감축을 전제로 한 2021년 NDC 상향안에 비해 5억1500만t을 추가로 배출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박지혜 플랜 1.5 변호사도 감축경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현 정부 임기 내의 연평균 감축률은 2%에 불과하고, 그 결과 차기 정부에서 연평균 9.3%를 감축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오히려 굉장히 비현실적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넥스트는 기후위기 대응을 소홀히 할 경우 기후 관련 국제 규제와 글로벌 고객사의 공급망 정책, 배출권 거래제 강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등으로 2030년 기업 영업이익률이 최대 23.7%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5대 기업 매출 감소만 30조원으로 전망했다. 이 부소장은 “산업계 부담을 다른 부문에 떠넘기면서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이 긴급한 일이 아니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면서 “탈탄소 전환에 느린 공급망과는 거래를 중단하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지혜 변호사는 “기업의 감축 행동에 오히려 정부가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지금도 (1달러의 경제적 가치 생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는지를 보여주는) 산업부문의 에너지 원단위 수치가 영국, 일본, 독일은 물론 미국보다 낮은 상황에서 감축목표까지 후퇴시키면서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구조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문제를 안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도 탄소중립 노력을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장은 지난 3월 22일 열린 공청회에서 “대한상의 분석 결과 현재 정책대로라면 2063년도에 편익이 비용을 앞서는데 정책을 일본, 미국 수준으로 당겨오면 2050년 안으로 편익이 비용을 앞선다”며 “탄소중립은 새로운 성장 전략이고, 이제는 기업도 더는 탄소 배출 오염자가 아니라 감축의 주체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빅웨이브, GEYK, 턴테이블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3월22일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공청회가 열리는 한국과학기술회관앞에서 시위을 하고 있다. /성동훈기자



CCUS·국제 감축 의존, NDC 불확실성 키워

정부는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하지만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상쇄하기 위해 실현가능성이 낮은 국제 감축과 CCUS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되레 2030년 NDC 달성은 불확실성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정부는 2030년 국제 감축 목표를 기존 NDC 상향안의 3350만t에서 3750만t으로 400만t 상향했다. 그것도 연도별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2030년 목표만 상향해 국가배출 목표에 합산했다. 중간목표를 제시하도록 한 파리협정에도 맞지 않다.

국제 감축의 경우 불확실성이 크다. 사업 대상국가의 정책 기조에 따라 감축 실적의 확보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 감축은 관련 국제기준 확정, 최초 활용 시기(2026년 예상) 등을 고려해 연도별 목표를 설정할 예정이라 30년 목표에만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스스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인정한 셈이다. 국제 감축은 우리나라보다 적은 돈으로 감축할 수 있는 나라의 탄소저감 사업에 투자하고 거기서 발생한 감축 실적을 우리나라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박 변호사는 “파리협정 이후 개도국도 감축 의무를 부담하면서 국제 감축분을 국내로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면서 “단적으로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의 NDC 달성에 지장이 없어야 해외 기업의 탄소 감축 실적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거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확보한 2000만t의 배출권을 감축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2021년 이전 감축 실적을 활용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32개국은 국제탄소시장의 환경건전성을 위해 2020년 이전 발생한 교토의정서상의 감축 실적을 파리협정 상의 NDC 목표 달성에 사용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산호세 원칙’에 합의했다.

국제 탄소가격이 오를 경우 막대한 재정 투입도 불가피하다. 산업계 부담을 줄인 만큼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국제 감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플랜 1.5는 국제에너지기구의 전망에 따라 2030년 배출권 가격이 100달러 수준에 달한다면, 2030년까지 3350만t을 확보하는 경우에도 16조~24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바에는 차라리 그 돈을 국내 산업계 감축 노력에 지원하는 게 국내 산업 경쟁력 확보와 일자리 보호에 더 바람직하다. 박지혜 변호사는 “국제 감축 활용 계획은 파리협정 취지에 어긋나는 편법적인 방식으로 커다란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고 감축분 확보와 관련한 리스크가 크다”면서 “최후의 옵션으로 검토하면서 상향조정을 철회하고 기존 감축목표의 4분의 1수준(900만t)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CUS의 경우도 대부분의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불확실한 대안이다. 정부는 CCUS로 2027년에서야 감축 실적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2030년 CCUS 감축 목표치를 오히려 기존 1030만t에서 1120만t으로 상향했다. CCUS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유전과 가스전에 저장하는데 국내엔 유전이 없고 가스전은 연간 40만t을 저장할 수 있는 동해가스전 하나뿐이다. 정부는 동해가스전의 용량을 늘리고, 국내 대륙붕을 탐사하는 데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박 변호사는 “실현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해 국제 감축과 CCUS 감축목표를 현실화하고, 이를 전환부문의 재생에너지 상향을 통해 이전하고, 산업부문 감축률도 14.5%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엔 여전히 소극적

정부는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위한 4대 전략, 12대 과제를 나열했다. 4대 전략의 하나는 “구체적·효율적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책임감 있는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CCUS·국제 감축에 의존하고, IPCC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밝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30 NDC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의 대부분을 차기 정부에 넘기면서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69%로 늘리고 미국은 43%, 일본은 36~38%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기본계획 정부안은 2030년 시점의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1.6%+α(알파)’로 표현했다.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난 1월 확정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의 수치를 두 달 만에 고치긴 어렵다는 곤혹스러움이 배어 있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다른 나라의 탄소중립 전략을 보면 전환부문에서 탈탄소를 시작하면서 다른 분야의 에너지 수요를 전기화하고, 마지막으로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는 것을 하나의 사이클로 가져가고 있다”면서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생에너지 증가인데, 목표치와 경로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기간이 오래 걸리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경우 크게 늘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유진 부소장은 “원전으로 2030년 NDC에 대응하는 건 너무 느리고,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통한 안전성 문제, 신규 원전을 전력망에 연결하는 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있다”면서 “가장 비용 효율적이고 지금 당장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후순위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을 보면 수출 기업에 가장 중요한 RE100 달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도 부족한 상황이다. 권 소장은 가장 확실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인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환부문의 감축 여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감축량을 지키지 못할 때 그걸 떠안을 수 있는 곳은 전환부문밖에 없다. 과거처럼 원전의 안전사고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도 가정하면 사실상 불확실성 대응 측면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중요하다. 재생에너지로 전환부문의 감축 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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