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그리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해소, 자기 통찰도 되죠”

한겨레 2023. 3. 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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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힐링 ③ 미술치료 : 김현진 아트앤마인드 대표 인터뷰
귀금속 디자이너였다가 ‘사람의 마음이 귀금속보다 더 귀한 보석’이라는 마음으로 미술치료사가 된 김현진 아트앤마인드 대표가 지난 16일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미술치료의 역사와 원리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미술치료 전문기관인 ‘아트앤마인드’의 김현진(53) 대표는 미술치료가 왜 효과가 좋은지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16일 아트앤마인드에서 만난 김 대표는 “내담자가 그린 그림에는 내담자가 밝힌 언어적 요소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마음속에 담긴 비언어적 요소와 무의식적 요소까지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마음속을 다층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 미술치료가 힘이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실 김 대표의 첫 직업은 귀금속 디자이너였다. 이탈리아 ‘갈레가리 인스티튜트 귀금속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26살이 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귀금속을 다루었다.

김 대표는 1998년 아버님의 작고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며 마음이 무너졌다. 이때 김 대표는 무너진 마음을 미술치료 등으로 이겨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아픔을 이겨내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돼 “사람의 마음만한 보석이 없다”고 생각했다. “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원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수백t의 채굴이 필요하듯이, 회복력 등 사람의 마음속 보석을 찾기 위해서도 수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음속 보석을 찾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 대표는 미술치료의 길을 택했다. 김 대표는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치료를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2005년 아트앤마인드를 설립했다. 현재는 센터에서 청소년, 성인 등을 상담하고 기업 등 기관에서 워크숍을 주로 진행하지만, “당시에는 미술치료 인식이 낮아서 센터로 찾아오는 분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체나 공기관 같은 곳에 직접 찾아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미술치료의 중요성을 알려야 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미술치료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특히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치료 활동을 이어가는 데 힘을 쏟았다. 그래서 2008년 비영리법인 ‘예술과 인간개발’을 설립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후 ‘예술과 인간개발’ 상임이사로서 안양소년원(안양여자중고등학교)에서 2009~2017년 통합예술치료프로젝트인 ‘숲이 될 나무’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프로젝트에 참여한 누적인원은 9천여 명에 이르렀다. 또 2011년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한 연평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통합예술치료 ‘하트 인 아트’를 5주간 매일 148회씩 진행하기도 했다.

 매일 쓰는 ‘그림 일기’, 자기 통찰력 높여

김 대표는 “이렇게 20년 가까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시간은 미술치료의 효과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미술치료 효과는 “미술이 창조성·치유성 같은 인간 본성을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표출해온 것과 관련이 깊다”고 본다. 그는 1만85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예로 들면서, 그림의 탄생은 인류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봤다.

김 대표는 하지만 근대적 미술치료는 1940년대 미국에서 체계화됐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멀게는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인간 소외 현상의 증가,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의 발전에다가 1929년 시작돼 1939년 끝난 미국의 대공황으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 등이 미술치료를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짚었다.

김 대표는 “그 이후 세계로 확산된 미술치료는 사회복지나 재활치료 교육 등에 널리 활용되는 등 예술치료 중 가장 ‘핫한 치료 방법’이 됐다”며 그 핫함의 비결로 미술치료의 네 가지 치료적 효과를 제시했다.

아트앤마인드에서 진행한 미술치료 시연 장면. 김현진대표(사진 왼쪽)가 직원들과 함께 실제로 미술치료가 어떻게 되는지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내담자는 그림을 그리는 창작과정에서 1차적으로 치유 효과를 경험하지만 미술치료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게 된다.

첫 번째는 미술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과정과 관련된다. 내담자가 작품을 만들면서 창의적인 것을 경험하게 되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둘째, 미술은 비언어적 요소까지 표현하게 하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비언어적·무의식적 요소를 이미지로 드러내면서 내담자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셋째, 다양한 미술매체를 통해 감각적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리기만이 아니라 찰흙, 돌, 나무, 모래 등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다양한 소재가 감성과 지각을 자극해 ‘감정적 해방과 자기 이완’을 가져다준다.

넷째, 미술치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치료사의 역할은 내담자의 건강한 측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건강한 측면을 확장해주는 안내자”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갈수록 미술치료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현대인의 경우 ‘자기 계발 과잉’ 압력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큰 이유”이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일반인이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는 미술 활동도 소개했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감정 일기’가 그것이다. 괜찮은 노트를 하나 사서 날마다 자신의 감정을 색이나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도 좋고, 그게 어렵다면 도형을 그려넣고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을 골라 칠하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림일기 작성에 몰입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림일기 작성도 일종의 창조과정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여기에 더해 “쭉 그려놓은 감정 일기를 살펴보면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물이나 패턴의 의미를 찾아가다보면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게 된다”고 한다. 김 대표는 물론 본격적인 치료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꼭 미술치료사와 함께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새로운 영역인 ‘아트테크’에서도 선도자 될 것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미술치료는 얼마나 효과가 높을까?’

김현진 대표가 최근 몇 년 동안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다. 계기는 김 대표가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석한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스마트시티’를 주제로 펼쳐진 전시를 보면서, 디지털 매체를 미술치료에 적용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그다음 해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가상현실(VR) 및 인터랙티브 기술과 미술·음악 등을 융합한 10종의 힐링콘텐츠를 개발했다. 김 대표가 상임이사로 있는 비영리단체 ‘예술과 인간개발’이 중심이 됐다. 개발된 힐링콘텐츠는 ‘예술과 인간개발’에서 소년원과 준법센터 등에 있는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힐링아트테크캠페인’에서 활용됐다.

김 대표는 이어 2022년부터 현재까지는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후원으로 가상현실 기술과 에스엠 콘텐츠를 활용한 모험용 힐링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이 힐링콘텐츠도 다문화 및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스마일! 힐링아트테크’ 프로그램에 활용 중이다.

디지털아트테라피에서는 어떻게 미술치료 효과를 낼까? 김 대표가 기획한 힐링아트테크 콘텐츠 중 하나인 ‘마이 롤코’를 살펴보자. 이 프로그램의 경우 이용자가 헤드마운트를 쓰면 총 16분간 인생의 희로애락을 상징하는 다양한 장면이 포함된 롤러코스터 체험이 펼쳐진다. 이용자는 영상을 다 본 뒤, 미술치료사 등과 대화하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 그림에서 입체영상으로 바뀌었을 뿐 미술치료의 기본 구조를 갖춘 것이다.

김 대표는 “아직 초보 단계인 디지털 통합예술치유 프로그램 분야에서 4년간 7천여 명 참여자의 다양한 심리검사 분석데이터 등을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개척자적 입장에서 힐링아트테크가 대중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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