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타워크레인 조종사, 강풍 불 때 임의로 조종석 벗어나면 위법?

이웅 2023. 3. 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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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 준법투쟁에 "불성실 조종사들에 최대 1년 면허정지"
"강풍 불 때 도급사 승인없이 조종석 벗어나거나 크레인 너무 천천히 운행하면 불성실 업무"
법조계 "면허정지 등 고강도 제재는 법적 근거 명확해야…근로자 작업중지권 제약 소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정부가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인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을 금지하면서 내놓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태업 방지 대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월례비 지급을 금지한 뒤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건설업체들의 불만이 나오자, 조종사가 안전을 이유로 고의로 작업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성실의무 위반'으로 간주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겠다는 방침을 지난 10일 내놨다.

당시 국토부 발표 자료에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원도급사(건축주와 직접 도급계약을 맺은 시공사)의 지휘·감독을 따라야 하고, 타워크레인에 대한 안전은 임대사(타워크레인 운영사)와 원도급사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돼 있다. 그러면서 순간풍속이 법상 위험기준치(초속 15m)를 초과했단 이유로 조종사가 원도급사 승인 없이 조종석을 이탈하는 경우 등 15가지를 면허정지 처분 사유가 되는 '불성실 업무 유형'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방침을 문언대로 해석하면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기계나 작업상 안전을 직접 판단하지 말고 원도급사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야 하는데 이를 어기고 안전을 이유로 독자 행동을 하면 면허가 정지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월례비 지급 중단에 불만을 가진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태업으로 인한 공사 지연 등 건설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이런 방침이 공사 현장에서 작업상 안전 여부를 따져보고 대처해야 할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권한과 역할을 제약할 소지가 있는 건 아닐까?

타워 크레인 [연합뉴스TV 캡처]

타워크레인(tower crane)은 탑 모양의 고정식 기중기로 고층·초고층 빌딩 건설에 사용된다. 국내에서 타워크레인이 법령상 건설기계로 분류되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지만, 이미 1960년대 이후 건설 붐 속에 건물이 대형화·고층화되면서 도입돼 크게 늘어났다.

국토부의 '건설기계 현황 통계'를 보면 국내 타워크레인 수는 2022년 말 기준 6천211대로 10년 전(2012년 2천900대)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으며, 타워크레인 조종사 면허 소지자는 2만3천629명(일반 1만1천106명·3t 미만 1만2천523명)이다.

타워크레인은 건설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용한 장비지만 크고 무거워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로 이어지기 쉽다.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부 당국에선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관리를 강화해왔다. 한 해 17명의 타워크레인 사고 사망자를 낸 2017년에는 국정 현안으로 삼아 '정부합동 타워크레인 안전대책'을 내놨으며, 타워크레인 설치가 급증한 2021년엔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주요 작업 안전수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타워크레인을 둘러싼 논란의 발단이 된 '월례비'는 기초·골조 공사를 맡은 건설 하도급사들이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 지급해온 일종의 웃돈으로, 공사비와 직결된 공사기간(공기)을 단축하고자 작업을 재촉하면서 현금을 주던 1960∼70년대 관행이 굳어진 것이다. 건설노조도 2018년 월례비 문제 해법 논의를 건설협회에 제안한 바 있으나 성사되진 않았다.

[표] 국토부 2021년 발표 '타워크레인 주요 작업 안전수칙'

[※자료=국토교통부 보도자료(2021.7.22) 발췌]

이런 가운데 건설 현장의 불법·부당행위 근절을 노동개혁 과제로 내세운 정부가 올해 초부터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우선적인 표적으로 삼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국토부는 지난 1월 실태조사 결과 118개 건설사가 신고한 월례비와 노조전임비 피해액이 3년간 1천686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은 '건폭 수사단'을 발족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국토부는 3월부터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을 수수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를 최대 1년간 정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반면 법원은 월례비를 협박·강요에 의한 금품갈취로 보는 정부와는 다른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지난달 광주고등법원은 하도급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상대로 월례비를 돌려달라며 낸 부당이득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월례비가 수십년간 지속해 온 관행으로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갖게 된 데다 지급이 강제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앞서 1심 재판부도 '월례비를 임금으로 보긴 어렵지만 지급을 강제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조종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월례비가 임금인지에 대해선 1, 2심의 판단에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인 월례비 지급을 강압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데는 1, 2심의 판단이 일치한 것이다.

정부가 월례비를 금지하자 건설노조는 이를 수용하면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월례비 대가로 수행해온 장시간·위험 작업을 거부하고 2021년 국토부가 마련한 '타워크레인 주요 작업 안전수칙'과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면서 작업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이달 들어 건설 현장에선 타워크레인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국토부는 건설노조가 안전을 이유로 태업을 벌인다고 보고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고의적 작업 지연이나 이유 없는 작업 거부에 대해 국가기술자격법상 성실의무 위반 조항을 적용해 최대 1년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겠다며 세부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그래픽] 건설현장 불법행위 유형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국토교통부는 21일 법무부·고용노동부·경찰청 등 관계부처가 함께 마련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요구하는 기사에게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국토부가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전체 건설현장 불법행위(2천70건) 중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이 58.7%(1천215건)를 차지할 정도다. yoon2@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국토부가 제시한 '불성실 업무 유형'은 15가지인데, 여기엔 강풍을 이유로 조종사가 자리를 이탈하는 경우 외에도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서 후속공정에 차질을 빚는 경우', '원도급사나 임대사 승인 없이 안전점검을 하는 경우', '원도급사가 인정한 하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요청을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원도급사가 정한 배치기준보다 많은 신호수(신호요원) 배치를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국가기술자격법 16조는 국가기술자격 취득자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품위를 손상시켜 공익을 해치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주무부처 장관이 국가기술자격을 취소하거나 3년 범위에서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근거로 태업 단속에 나선 셈이다.

연합뉴스는 이 같은 국토부의 '성실의무 위반 판단기준'이 현행법과 법리에 부합하는지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행정상의 불이익 처분이나 형사처벌은 명확한 법률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평소 속도대로 작업을 안 하면 성실의무 위반으로 간주하겠다는 건 무리한 법 적용으로 보인다"며 "특히 면허정지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박탈하는 고강도 제재여서 비례의 원칙에 따라 계약상 의무 위반을 넘어서 건설 현장 작업이 올스톱 되는 정도로 이해관계인이나 사회에 중대한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 국토부의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성실의무 위반 판단기준

[※자료=국토교통부 보도자료(2023.3.10) 발췌]

법무법인 강남의 이남수 변호사는 "성실의무 위반으로 자격을 취소·정지할 수 있는 국가기술자격법 규정 자체가 매우 포괄적인데 시행령에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며 "하지만 국토부의 성실의무 판단기준이 재판에서의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고 실제로 (작업자의 행위가) 안전을 이유로 한 것이 인정된다면 성실의무 위반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국토부의 방침은 무리한 것이고, 재판으로 가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주한의 송득범 변호사는 "면허정지는 당사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처분이므로 사유를 원칙적으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성실의무의 범주에 대해 법적 다툼의 가능성이 있고, 부당결부금지 원칙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당결부금지는 행정적 제재를 할 때 실질적 관련이 없는 사유로 제재해선 안 된다는 행정법상 원칙이다.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임대회사' 소속 직원인 조종사가 원도급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작업상 안전에 대한 판단 권한도 원도급사에 있다고 명시한 국토부의 전제부터 현행법과 법리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원도급사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하고, 타워크레인에 대한 안전은 임대사, 원도급사가 판단할 사항'이라면서, 그 근거로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제8조)와 기계 임대사와 원도급사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제81조)을 들었다.

타워크레인 운용 점검 나선 원희룡 장관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운용 관련 점검을 하고 있다. 2023.3.14 hihong@yna.co.kr

이에 대해 법무법인 정향의 민경현 변호사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건설 현장에서 원도급사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한다는 건 사적 계약인데 이를 위반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면허를 정지시키는 건 위법하다"며 "계약 위반으로 인해 공익에 심각한 타격이 오는 경우 성실의무 위반으로 판단될 소지가 있는데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최승환 변호사는 "계약 사항이라 해도 조종사가 타워크레인 운영사 직원이라면 도급계약을 맺은 원도급사(시공사)의 지휘·감독을 직접 받도록 하는 건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으로 다툴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제9조)은 근로자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파견근로자보호법(5조)에선 예외적으로 파견이 가능한 업무와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는데, 대법원 판례상 외형상 도급계약이라도 사실상 근로자 파견으로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 하청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원청 사업주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순간풍속이 법상 위험기준을 넘어도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임의로 자리를 이탈하면 성실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근거로 '사업주는 순간풍속이 초당 15m를 초과하는 경우 타워크레인 운전작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규정한 산업안전보건규칙(제37조)을 들었다. 조종사가 아닌 사업주가 작업 중지의 주체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은 법에 보장된 근로자의 보편적 권한이다. 산업안전보건법(제52조)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땐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최승환 변호사는 "사업주에게 안전 책임을 부과한 법 규정을 사업주에게만 안전에 대한 판단 권한이 있는 것처럼 해석해 현장 작업자(조종사)의 판단 권한을 배척한 것으로 보인다"며 "설령 작업자의 작업중지권을 제한할 의도가 아니라 해도 실제로 행사하는 걸 매우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타워크레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희범 변호사는 "대개 현장 작업자가 위험해서 작업을 못 한다고 할 때 사업주는 그냥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위험 발생 요인이 있으면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사업주에게 금지 의무를 부과한다"며 "현장 작업자도 당연히 이 규정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현 변호사는 "현장 작업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으므로 사업주와 별도로 안전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법률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토부의 '성실의무 위반 판단기준'이 문언을 기준으로 볼 때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안전에 대한 독자적 판단을 부당하게 배척 또는 제한하거나, 근로자의 작업중지권과 상충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규철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위험기준을 넘어서는 강풍이 계속되고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다만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넘었다고 임의로 조종석을 이탈하는 등 전체적인 상황을 감안해 의도적인 태업으로 볼 정황이 충분할 때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타워크레인 기사 월례비 요구 시 면허 정지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정부가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요구하는 기사에게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국토부는 21일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에서 건설사가 관행적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급여 외 별도로 지급하는 '월례비'를 부당금품으로 명시하고 이를 받는 기사에게 면허 정지·취소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2023.2.21 dwi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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