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과 북핵 위협 고조…한일 관계 복원은 불가피 [쓴소리 곧은 소리]

심윤조 한일친선협회중앙회 부회장, 전 국회의원 입력 2023. 3. 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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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제시 없이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는 반일선동 안타까워
한일, 피해-가해 의식의 멍에 벗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시사저널=심윤조 한일친선협회중앙회 부회장, 전 국회의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에 전격적으로 일본을 방문해 신(新)한일 협력관계를 선언하고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이로써 한일 양국은 그간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싸고 얼어붙었던 국면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협력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중 경쟁과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복합 위기의 국제정세에서 한일 관계를 시급히 복원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결단에 따른 성과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이를 환영하며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내에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일부 피해자는 대위변제 방식에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고, 전 정권의 집권당으로서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었던 야당 측은 대안 제시 없이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는 반일선동에 나서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일 관계를 방치하기에는 작금의 국제정세가 결코 태평스럽지 않다.

2012년과 2018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관련 재판에서 "불법적 식민지배하에서 행해진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보상"을 판결했다. 즉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내린 판결이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내용 중 14년간 교섭 과정에서 끝까지 양측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이다. 결국 양측은 한국의 무효 입장과 일본의 유효 입장을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하나의 문안에 담아 각자 자국 입장에 맞게 해석함으로써 '부동의에 동의(agree to disagree)' 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당연히 그 후에도 한일 양측은 자국 입장을 양보한 적이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조약의 타 당사국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우리 입장에 따라 조약을 해석하고 그 결과를 일본 측에 부담지웠다는 점에서 '사법자제의 원칙(Restraint of Justice)'에서 일탈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전 정부는 이 판결을 계기로 3권 분립의 미명 뒤에 숨어 반일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아 한일 관계를 수렁 속으로 밀어넣었다. 3권 분립은 헌법상 정부 구성 원리이지 국가의 대표성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취할 자세는 아니었다. 그 결과 경색된 한일 관계는 안보와 경제 등 다방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상호 국민 감정은 악화되었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1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일본 측 인사를 만나기 위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물질적 보상에 의한 과거사 문제 해결 지양을 

대법원 판결과 한일청구권협정의 정합성을 감안해 나온 방안이 제3자 대위변제다. 이 방안에서 최종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일본 전범기업의 참여 여부다. 일본 측으로서는 이들의 참여가 곧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참여를 거부한다. 

따라서 이들의 참여를 사전에 약속받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일본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선제적으로 밝혔다. 윤 대통령이 "구상권 요구는 문제를 다시 원위치시키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이에 연유한다. 

이로써 대위변제 해법으로 커다란 장애를 우회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이 문제는 장래에 해결할 여지를 남겨두고 우선 관계 정상화 열차를 출발시키는 것이 현 대내외 정세를 감안할 때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

더 근본적으로는 금전적 보상에 의한 과거사 문제 해결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1993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고노 담화가 나오게 된 데는 김영삼 대통령이 밝힌 '물질적 보상 불요구 방침'이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도 이 방침을 계승해 일본의 '아시아 여성 민간기금'을 수령하는 대신 우리 정부 예산과 민간 모금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후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와 함께 '한일 21세기 신시대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꽃을 피웠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자"는 30년 전 두 분 대통령의 혜안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던 지난 세월에서 이젠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은 김영삼-김대중 정신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격상되었고 우리 젊은 세대는 선진국 국민 수준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피해자 의식의 굴레를 계속 씌우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국력에 걸맞은 품격과 민족적 자긍심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일본도 우리 정부의 결단에 적극적 호응해야 

한일 정상회담 이후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가 정상화되었고 상호 수출규제 조치도 신속히 해제 절차를 밟고 있다. 윤 대통령은 4월 방미에 이어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주최국인 일본 초청으로 참가한다. 지난 시절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한국 외교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경제계의 활력도 감지된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양국 국민 모두에게 안보,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관광 등의 측면에서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고 상호 국민 감정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일 협력은 한·미·일 3국의 경제안보협력 강화로 이어져 우리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수행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일본도 우리 측의 담대한 조치에 호응해 적극적인 자세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방일 시 일본 측의 상응 조치가 미흡한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기시다 총리가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외무대신으로서 합의 불이행을 경험한 바 있고 4월 지방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신중한 자세를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앞으로는 소소한 법리에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협력해 나간다는 대국적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구상권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거사의 책임이 면제되었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과거사 관련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으면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세가 요구된다. 늦어도 기시다 총리의 방한 때까지는 가시적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일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넘어 더 높은 차원에서 윈윈 하는 협력관계를 미래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은 비단 필자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심윤조 한일친선협회중앙회 부회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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