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초록’에 담긴 ‘제주’의 평화[책과 책 사이]
지난해 여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동양화가 김보희의 ‘더 데이즈’ 전시를 보러 갔다. 제주에 20년째 살고 있는 화가의 눈을 거쳐 그림으로 펼쳐진 제주의 풍경은 아름답고 따스했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풍경을 담아낸 그림들은 마음을 쉬게 하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다. 김보희는 초록 풍경 속에 빨간 커피잔을 그려놓곤 하는데, 그 작은 커피잔 덕분에 마치 그림 속으로 초대받은 느낌을 주었다. 김보희는 빨간 커피잔에 대해 그림 속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자리는 관객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자리로 변신한다.
김보희의 첫 그림산문집 <평온한 날>(마음산책)은 그의 그림을 똑 닮은 책이다. 크고 무거운 도록 대신 가벼운 책 속에 담긴 그의 그림과 일상생활에 대한 단상들은 또다시 그의 그림 속으로 초대받는 느낌을 주었다. “제주도에서 내가 느낀 대로, 본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들과 짧은 글들이 책을 받아든 사람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환기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 그대로다.
그의 그림엔 제주의 푸른 바다부터 초록 숲, 직접 가꾼 정원에 심은 수국, 로즈메리, 야자나무 등이 등장한다. 여인초와 셀렘, 용설란과 같은 열대 식물이 제주의 따스한 정원에서 울창하게 자라난 모습도 볼 수 있다. 번성하는 생명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매일 보는 바다의 색이 달랐다. 나무 색도 달랐다. 초록에도 차이가 있었다. 짙푸른 초록, 노란빛이 도는 초록, 강렬한 초록, 새초롬한 초록…. 초록 그림이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반영이다. 그 싱싱한 초록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제주의 자연이 그림을 통해 내게 한번 닿았고, 그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닿는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끌리는 것”이라는 김보희의 말처럼, 그의 그림과 글은 마음을 움직이고 끌어들인다. 제주엔 봄꽃이 한창일 것이다. 제주에 가지 못한다면 <평온한 날>이라도 보며 마음을 달래보자.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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