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는 선례가 아니다, 오타니는 언제까지 이도류를 할까?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고교 시절 작성했다는 인생 계획표를 보면 무척 구체적이고 예언가적 기질도 엿보인다.
18세에 미국에 진출해 이듬해 영어를 마스터하고 트리플A에 오른 뒤 20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22세에 사이영상을 받는다는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나이 별로 목표를 정해놓는 치밀함과 원대한 '청춘의 꿈'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27세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에 발탁돼 MVP에 오른다는 계획은 소름돋을 정도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번 WBC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연기됐을 뿐 2년 전 오타니의 나이는 27세였다.
또 눈에 들어온 계획은 40세에 은퇴하되 마지막 경기에서 노히터를 달성하겠다는 것. 오타니가 40세가 되는 시즌은 2034년이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투타 겸업을 하겠다는 포부가 놀랍다. 물론 그 나이에 타자를 포기하고 투수로만 활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상 투수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오타니는 은퇴할 때까지 투타 겸업을 유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타자 혹은 투수, 하나만 하는 여느 선수들보다 두 배의 노력과 체력이 필요할텐데, 40세까지 투타 겸업이 가능할까. 의학과 트레이닝 이론을 굳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투타 겸업 원조인 베이브 루스는 투타 겸업을 사실상 두 시즌만 하고 투수를 포기했다.
다만 루스가 타자로 전향한 건 체력 문제가 아닌 순전히 개인 욕망 때문이었다. 그는 투타 동시 활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어난 선발투수였다. 1915년 첫 풀타임 선발로 18승을 올린 뒤 1916년과 1917년 각각 23승, 24승을 따내며 최정상급 투수로 자리잡았다. 1916년과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는 29⅔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이며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가 타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18년이다. 4~5일에 한 번 선발등판하거나 대타로 가끔 타석에 서는 게 연봉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던 터에 1차 세계대전에 빅리거들의 군입대가 이어지면서 선수 부족 사태가 생기자 주전 타자로의 전향을 꿈꾸게 된다.
당시 에드 배로우 보스턴 감독은 루스의 타자 전향을 망설이다가 외야수 해리 후퍼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투수로 나서지 않는 날 그를 외야수 또는 1루수로 기용했다. 주전 야수로도 활동폭을 넓힌 루스는 그해 투수로 13승7패, 타자로는 11홈런을 치며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다.
타격 재미에 푹 빠진 루스는 1919년 투수로는 9승5패에 그쳤지만 타자로 더 많이 출전해 29홈런을 터뜨리며 전국구 홈런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거포 변신에 성공한 루스는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옮기면서 날개를 달았다. "타자에 전념하라"는 밀러 허긴스 양키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54홈런을 날리며 전설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러한 루스의 투타 겸업 과정과 포기 행보를 보면 지금 오타니와 비교할 수 있는 선례(先例)는 아니다.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 투타 겸업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2배의 연봉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ESPN은 24일 '2023년 플레이어 랭킹' 코너에서 오타니를 1위에 올려놓았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투수이자 공포스러운 타자'라는 것 말고 특별한 설명도 달지 않았다. WBC에서 증명된 실력을 또 언급하는 건 무의미하다. 흥미로운 것은 3년 뒤인 2026년 플레이어 랭킹에서도 오타니가 1위의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ESPN 소속 4명의 기자 모두 오타니를 1위로 꼽았다. 3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투타에서 톱을 찍을 것이란 예상이다. 지금 분위기에서 오타니가 언젠가는 투타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타니가 계획대로 40세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면 올시즌 후 FA 시장에서 계약기간 11년을 확보하면 된다. 연봉 5000만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하니 총액 5억달러는 쉽게 따낼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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