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포 40여년 뒤 대전시민이 한글로 쓴 편지, 그 내용은?…‘가장 오래 된 한글 편지’ 보물 지정 기념전

“분(粉)과 바늘 6개를 사서 보내네. 내가 집에 다녀가지 못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과 아기 모시고 다들 좋이(별 탈 없이) 계시오. 난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1490년(성종21년) 무렵 영안도(현 함경도)에서 군관으로 복무하던 나신걸(1461~1524)이 1490년(성종 21년) 현재의 대전지역에서 생활하는 아내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이른바 ‘나신걸 한글편지’는 2011년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를 이장할 때 발견된 문화재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9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이 편지를 소장하고 있는 대전시립박물관은 이 한글편지가 보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4일부터 5월 28까지 박물관 3층 로비에서 ‘최고(最古)의 한글 편지 전시회’를 개최한다.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를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편지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선 훈민정음 반포(1446년) 후 40여년이 지난 시점에 대전지역까지 일상생활에서 한글이 사용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또 훈민정음 반포 초기에는 한글을 주로 여성과 평민들이 사용했다는 그동안의 속설과는 달리 양반 남성도 일찍부터 한글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편지의 내용도 재미있다. 역사스토리텔러 이기환씨는 “‘나신걸 편지’에는 ‘분과 바늘’을 선물로 보낸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보고 싶다’느니, ‘사랑한다’느니 하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무심한 듯 아내를 챙겨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화장품에 해당하는 분과 바늘은 조선 시대 여성들이 평생 간직하고 싶어하던 물건이었다는 점에서 편지에 담긴 나신걸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분과 바늘은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절단이나 서울을 다녀온 남자들이 들고 온 단골 선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편지는 또 국어표기 및 문법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한글 서예의 서체 변천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나신걸 한글편지’의 실물은 물론 편지의 전문내용과 해석문도 함께 볼 수 있다. 더불어 발견 당시의 모습과 수습 및 보존처리 과정,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과정에 이르기까지‘나신걸 한글 편지’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전시회에서는 한글 편지와 같이 발견된 복식 유물도 함께 선보인다.
김희태 대전시립박물관장은 “나신걸 한글편지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시를 마련했다”면서 “벚꽃 등 다양한 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 대전시립박물관을 찾아와 사랑이 가득 담긴 한글 편지를 살펴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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