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밀어붙인 '쌀 의무매입법', 尹대통령 '거부권' 행사할듯…운명은

세종=정혁수 기자, 오문영 기자, 박종진 기자 2023. 3. 24. 0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T리포트] 남는 쌀은 세금으로?(下)
[편집자주] 일정 수준 이상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됐다. 남아도는 쌀이 더 늘어나고, 이 때문에 나랏돈이 낭비된다는 여당의 반발에도 야당은 밀어붙었다. 재정을 아끼고 시장 원리를 지키면서도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을 확보할 방법은 없을까.
국회 통과한 쌀 의무매입법...정부 "대통령에 거부권 제안"
(경기=뉴스1) 김영운 기자 =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23일 오후 경기도의 한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바라보고 있다. 2023.3.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강행 처리되자 그동안 "정부 재량으로 시장격리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농림축산식품부는 크게 반발했다.

농식품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가 농업경쟁력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WTO(세계무역기구)협정에도 위반되는 만큼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대통령에게 제안할 계획"이라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3일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국회에서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된 점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깊은 유감과 허탈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그동안 계속 밝혀왔듯이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안정을 위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시장격리)하게 하는 게 골자다.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식품부는 해당 법안이 시장격리 제도 의무화가 WTO(세계무역기구)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장 가격 지지 등을 위해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은 WTO 협정에서 정한 '감축 대상 보조'에 해당해 1조 4900억원 이상 지급시 WTO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급증하는 매입 비용도 문제다. 서구식 식습관이 보편화되고 1인 가구 증가로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초과 생산량 격리 소요 비용이 갈수록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2026년 1조원, 2030년 1조 4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매입한 쌀을 되팔아 얻은 이익이 매입 비용의 7% 수준에 불과한 것도 큰 부담이다.

쌀 시장격리에만 매년 1조원 이상 재정이 투입될 경우, 전체 농가에 혜택이 돌아가는 공익직불금의 충분한 재원 확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 장관은 "현 정부는 과거 그 어떤 정부보다 쌀값 안정과 식량안보 강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양곡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난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수확기 쌀 시장격리로 쌀값을 회복시켰고,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가루쌀 산업 활성화 등의 대안도 마련했다"고 했다.

또 "지난해 9월 개정안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개정안의 부작용을 설명하면서 국회에 심도 있는 논의를 요청했다"며 "많은 전문가도 개정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38개나 되는 농업인단체·협회와 전국농학계대학장협의회도 신중한 재고를 요청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하는 것'은 쌀 공급과잉을 심화시켜 시장격리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경우, 쌀 이외 다른 분야 투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을 뿐만아니라 쌀값이 더 하락할 수밖에 없어 쌀 생산 농가와 농업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장관은 "법률안은 이제 곧 정부로 이송될 예정으로 정부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해 그 뜻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이번 법률안은 그 부작용이 너무나 명백하다"며 "이에 저는 농식품부 장관으로서 '대한미국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민 여러분께서도 쌀 생산 농가와 소비자, 쌀 산업과 농업의 미래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남는 쌀을 나라가 사준다고?"...그런 나라 또 있나, 찾아보니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인 2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농협 수라청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농산물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숙제다. 그러나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칫 정부가 수요를 보장해준다는 신호로 전달돼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실패 사례들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관리법)을 두고 관련 기관과 학계 등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양곡관리법은 수요 대비 쌀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5~8% 하락하면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토록하는 내용이 골자다.

◇태국, 2011년 의무매입제 시행…이듬해 쌀 생산량 23%↑

전문가들은 현재 양곡관리법과 유사한 방식의 쌀값 유지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외국에서 있었던 유사 정책이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 때문이다.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2011년 태국 정부가 시행한 의무 수매 정책이 거론된다. 당시 잉락 친나왓 내각은 시중 가격의 150% 가격으로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지정된 창고에 입고된 후 4개월간 농가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시장가격이 높다면 판매가 가능하고, 미판매 시 정부가 소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수매정책은 급격한 생산량 증가를 낳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태국의 쌀 생산량은 의무 수매 정책 시행 1년 만에 23% 증가했다. t(톤)당 쌀값도 2011년 8155바트에서 2013년 9972바트로 올랐다. 정부가 쌀을 책임지고 매입해주자 고품질이 아닌 다수확 품종 생산에 집중하는 농가들이 늘어난 것이다.

결국 태국 정부는 쌀 매입 비용으로 2012년 13조3000억원, 2013년 14조9000억원을 지출했다. 태국 재무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쌀 수매로 인한 손실은 9조5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쌀값이 상승한 탓에 수출 경쟁력 역시 하락했다. 2012년 태국의 쌀 수출 실적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695만톤을 기록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23일 오후 경기도의 한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뉴스1


◇유럽 '최저가 보장 정책'도 실패…옆나라 일본은?

유럽에서는 1962년 '유럽공동농업정책'(CAP)를 통해 농산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하고, 과잉 공급된 농산물은 보조금 지급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하지만 이는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 농가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1970년대 이후 CAP 정책 시행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매년 2% 증가했다. 평균 농산물 수요 증가율인 0.5~1%를 초과하면서 잉여농산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밀 생산량은 수요의 30%를 초과했다. 버터와 쇠고기의 초과 생산량도 각각 34%, 10% 수준을 기록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CAP는 일부 대규모 농가에만 이익을 주고 유럽 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의 소득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재정 부담만 초래했다"고 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어떨까.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곡관리법과 같은 형식의) 의무매입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1960~70년대에 일부 농가를 상대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 과잉 물량을 매입한 사례가 있다"면서 "과잉은 해소되지 않고 막대한 재고 관리비용이 소모됐다. 많게는 한 해 소비량의 60% 이상이 재고로 쌓였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일본 쌀 시장 상황이 많이 호전됐다"며 "(양곡관리법 같은) 시장격리는 일본은 시행하고 있지 않고, 타작물 전환을 위한 정책들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쌀 시장 내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농가들이 다른 작물로 생산을 전환하도록 유도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尹대통령, '세금으로 쌀 매입' 양곡관리법 거부권 절차 착수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복지·노동 현장 종사자 초청 오찬에 입장하고 있다. 2023.03.23.

윤석열 대통령이 거대 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절차에 들어간다. 헌법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진행하면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다는 계획이다.

23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69표, 반대 90표, 기권 7표로 의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국익에 배치되는 법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법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 처리에 의해 처리된 법안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날 처리된 양곡관리법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일정 수준 이상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규정한 내용은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무리한 내용이라는 결론이다. 특히 다른 농작물은 물론 여타 산업 종사자들과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과잉 생산을 조장 방조할 수 있기 때문에 농업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민들의 표심을 노려 강행 처리한 법안일 뿐 나라 전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대통령실은 판단한다.

다만 즉각적인 거부권 행사 대신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칠 예정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관계부처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각계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청취해야 한다. 대통령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거부권 행사 법률안 결정은 해당 부처의 제기에 따라 법제처가 심의한 뒤 국무회의에 상정해 의결한다. 거부권 행사는 빠르면 이달 말이나 늦으면 다음 달 초쯤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복지·노동 현장 종사자 초청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3.23.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 제53조에 근거한다.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재의가 요구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법률로서 확정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3분의 1 넘는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의 요구된 법안의 의결은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해 추가 입법까지 예고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 거부권 행사와 추가 입법의 '강 대 강' 대결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곡관리법뿐만 아니라 연이어 야당의 강행처리가 예고된 간호법이나 방송법 등 다른 쟁점 법안들도 줄줄이 비슷한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여야 합의도 없이 통과된 국익을 해치는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세종=정혁수 기자 hyeoksooj@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