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억지’와 ‘떼거지’
열심히 밭을 가꾸고 있는데, 필자보다 젊어보이는 사람이 밭으로 와서 대뜸 “남의 땅을 침범허지 말라.”고 고함을 친다. 필자는 실제의 땅보다 안 쪽에 나무를 심고 있는데, “200 평밖에 안 되면서, 너무 남의 땅을 침범하고 있다.”고 고함을 친다. 그리고, 필자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억지를 부린다. 화가 나서 함께 소리치고 싸워 봤지만 대화가 안 통한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정말 억지가 심해도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조용히 나무 잘 심고 있는데, “왜 타관 사람이 와서 남의 땅에 농사를 짓고 있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시골 인심이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오호 애재라.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구경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억지’란 정말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생각이나 주장을 무리하게 내세우거나, 잘 안 될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기어히 해 내려는 고집”을 ‘억지’라고 한다. 세종시에 살면서 자주 밭에 오지 못한 것이 탈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억지는 지금까지 처음 겪어 본다. ‘어거지’라는 말도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기지를 부린다.’고 한다. ‘억지’의 비표준어이다. 그래서 ‘어거지 농사(지나치게 힘겨운 농사)’, ‘어거지 웃음(억지 웃음의 방언)’ 등으로 사용하지만 표준어는 아니다. 내 땅에 내가 농사 짓는 것도 잘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부아가 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선거 기간 중에 세종시 전의면에서 열심히 농사지으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도 부동산 투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적도 있다. 화가 나서 농업경영체 등록도 했고, 매일 일하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참으로 세상에 이런 억지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람이 싫어진다.
‘떼거지’라는 말도 있다. 우리 어린 시절엔 “떼거지부린다”라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옳지 않은 것이다. ‘떼거지’란 “재변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거지가 된 많은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을 이른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거지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지들이 밥 달라고 문 밖에서 아우성치며 고집부리는 것을 생각하고 ‘떼거지부린다’라고 표현한다. 억지로 생떼를 부릴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의미의 비약이 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문으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도처에 떼거지가 생겨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루 아침에 떼거지가 되었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을 한다. 억지로 일을 이루게 하려는 말을 비유한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억지춘향’과는 다르다. 내 땅에 내가 농사짓는 것을 억지로 방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떼거지로 몰려와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퇴직 후 아름다운 꿈을 안고 시골에 살고자 했던 바람은 이미 산 넘어간 것 같다.
호호 통재라! 투덜투덜~~~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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