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먼지봉지가 꽉 차면 의자 변신… 실용에 철학을 입힌 ‘마법’[지식카페]

2023. 3.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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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원의 지식카페 - (25) 유르헨 베이
탁자와 의자 하나로 묶은‘코쿤퍼니처’… 설치미술 같은 가구로 평소 익숙한 사물에 대한 선입견 깨
‘슬로 카’는 현대인의 일 중독 풍자… 통나무에 등받이만 끼운 벤치는 가공미에 열중하는 디자인 비판
진공청소기 의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중에는 상품성 있는 디자인에 별로 욕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상품을 만드는 일이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분야.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상품성 있는 디자인을 내놓아 부와 명예를 얻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새털처럼 여기고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심오하게 탐구하면서 진정 감동적인 디자인들을 만들고 있는 거장들이 있다.

네덜란드의 유르헨 베이가 그런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를 사유하고, 그만큼 철학적 경향이 강한 산업 디자이너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류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상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디자이너들이 부지기수인 세계 디자인계 안에서 그는 정신성이 강한 디자인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세우고 있고, 많은 사람의 정신을 매료시키면서 디자인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이 꼭 상업성을 추구해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라 철학적인 디자인이 오히려 많은 사람의 수준 높고 광범위한 관심들을 독점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가 디자인한 진공청소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 그림 1 진공청소기 의자 = 지금은 진공청소기에 먼지를 담는 종이 포대 자루가 없어졌지만, 원래 진공청소기에는 빨아들인 먼지가 담기는 종이 봉지가 필수로 달려 있었다. 그래서 진공청소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이 먼지 봉지를 분리수거 봉투처럼 따로 구입하고, 먼지가 차면 버리고 봉지를 교체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기 제품에 이런 종이 소모품이 붙어 있다는 것이 아주 불합리해 보이는데, 바로 이런 부당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먼지 봉지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진공청소기를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 마이크 다이슨이 만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다이슨 청소기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런데 유르헨 베이는 문제의 먼지 봉지를 없애기보다는 이 먼지 봉지를 진공청소기 바깥으로 뺐다. 그러면 청소를 하면 할수록 먼지들이 진공청소기 밖에 있는 봉지에 많이 담기게 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먼지 봉지에 먼지가 공기처럼 가득 찬다. 그러면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치명적으로 불편해지는데,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잘못된 처리다.

그런데 유르헨 베이는 이 먼지 봉지를 의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모든 문제를 역전시켰다. 진공청소기를 사용할수록 먼지 봉지가 가득 차서 의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르헨 베이는 청소를 하는 도구가 의자를 만드는 생산기계가 되도록 하여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능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봉지 안으로 쓸모없고 더러운 먼지 찌꺼기가 충만해질수록, 점차 쓸모 있는 의자가 만들어지는 디자인적 마술을 부려놨다.

유르헨 베이는 이 청소기 의자를 만들면서, 단지 쓸모 있거나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을 새롭게 제시했다. 먼지가 쌓일수록 의자가 만들어지는 디자인 개념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이론, 즉 에너지는 점점 쓸 수 없는 상태로 바뀐다는 논리를 뒤집고 있다. 엔트로피가 올라갈수록, 즉 먼지가 쌓일수록 엔트로피도 올라가며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물리학적 견해를 거스른다.

그러면서 재활용이나 지속가능성 같은 뻔한 방법에만 기대고 있는 기존의 환경디자인에 대한 일침도 가하고 있다. 그런 접근들이 사실은 더 많은 환경 오염을 유발하며, 재료의 수명을 한 사이클 저지하는 결과밖에는 낳지 않는데, 유르헨 베이는 어떤 화학적 처리나 인위적인 작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자리에서 먼지를 의자로 만들면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디자인의 존재 가치와 세상이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는 낡은 관점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바꾸는 문제작들을 내놓으면서 단지 아름다운 디자인, 잘 팔리는 디자인, 편리한 디자인이 아닌 보다 근본적 가치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가지는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한다.

코쿤퍼니처.

◇ 그림 2 코쿤퍼니처 = 코쿤퍼니처라는 독특한 이름의 의자(?) 역시 단지 아름답거나 기능적으로 뛰어난 대신에 독특한 가치를 던져주는 디자인이다. 앤티크하게 생긴 탁자와 의자를 하나로 결합시키고 그 위에다 플라스틱 막을 씌워놓았다. 무슨 설치 미술 같기도 한데, 앉을 수 있는 의자로서의 역할에 미흡함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의자를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가지도록 디자인해 놓았다.

평범한 의자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하고 평범한 의자를 단순한 처리로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매우 초현실적인 존재로 만드는 솜씨는 일반적인 디자이너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개념 미술처럼, 첨단 소재와 익숙한 가구가 하나로 결합된 개념적(conceptual)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의자 위에 막을 씌워 놓은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의자의 구조다. 그러나 그 구조는 의자를 암시할 뿐이다. 눈치챘겠지만 이 디자인은 우리가 가진 물체에 대한 선명한 의식과 인상을 전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면서 디자인뿐 아니라 사물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무효화시킨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명이 무명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의자라는 인공물의 존재감이 막을 통해 흐려지면서 자연으로 환원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을 디자인이라고 하기보다는 뛰어난 철학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보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는 것 같다.

슬로 카.

◇ 그림 3 슬로 카 = 전기로 작동하는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다. 사실 자동차라기보다는 전동 휠체어에 가깝긴 하지만, 사실 이건 움직이는 개인 사무실이란다. 의자에 앉으면 바로 앞에 책상이 있고 상체가 꽉 차게 생겼다. 그래서 책상에서 일을 하면서도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하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전기차가 빠르게 달릴 수 없다는 데 착안해 오히려 천천히 달리면서 일과 공간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일에 중독된 현대인을 위한 자동차라는 평가가 많은데, 사실 이 자동차는 그러한 기능적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일만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풍자성이 더 짙다. 유르헨 베이는 디자이너의 할 일을 사회 풍자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붐 뱅크(Boombank).

◇ 그림 4 붐 뱅크 = 벤치라고 하는데,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에 고전적인 모양의 등받이만 끼워져 있다. 공원의 통나무를 의자처럼 쓰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통나무 덩어리를 벤치로 사용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조금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의자에서 빼 온 듯한 모양의 등받이만 통나무에 끼워 놓았으니 디자이너의 무성의함도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벤치는 디자인은 무조건 기계로 반듯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거스르고 있다.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 디자인의 개념도 와르르 무너질 만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의자는 세계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됐다. 아울러 회사에서 수십 년을 몸 바쳐 가구 디자인을 해온 사람들의 어깨를 하루아침에 남루하게 만들 만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 통나무 덩어리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통나무에 등받이. 그냥 보면 설치미술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디자인인 이유는 의자라는 기능성에 기반을 두고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자의 기능성. 그것이 꼭 사람의 허리나 엉덩이에만 중점을 두어야 한단 말인가? 사람도 생명체의 그물 속에 있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면 이런 인간이 쓰는 물건도 인간이라는 제한된 영역에 헌신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속해 있는 자연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디자인은 재료를 인간에 맞춰 극단적으로 가공하기보다는, 자연에 맞춰 적당히 가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 통나무 덩어리는 바로 그런 말을 하면서, 온갖 첨단기술과 온갖 화려함을 갖추고 있는 디자인들이 가진 어떤 모자람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디자인을 상품으로만 보고 기업에 헌신하기만 한 디자인, 사람만 보고 기능에만 헌신한 디자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전적인 장식의 등받이를 자연 통나무에 박아 놓은 것도 고전주의적 장식에 대한 부드러운 비판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디자이너가 만든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많은 디자인이다.

이처럼 유르헨 베이는 파고들면 들수록 담긴 가치들이 끊임없이 샘솟는 그런 문제적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디자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이 정도면 디자이너의 수준을 넘어서서 철학자에 이르렀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철학들을 디자인을 통해 보여줄까? 자못 기대가 된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유르헨 베이 Jurgen Bey (1965∼)

△1984∼1989년 :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산업디자인학교

△1998∼2004년 : 동대학에서 강의

△2004∼2005년 : Man & Living 부서 책임자 역임

△2002년 : 건축가 Rianne Makkink와 Studio Makkink & Bey 설립

△2005년 : Prins Bemhard Cultuurfonds 수상

△2008년 : Woonbeurspin 수상

△1999년 : Treetrunk Bench 디자인

△2010년 9월 : Gerrit Rietveld Academy 석사프로그램인 Sandberg Institute의 이사

△2014년 : 예술 아카데미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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