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다음엔…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임보디드 AI’ 시대”[현안 인터뷰]
“전엔 사람이 기계어 배웠지만
이제는 기계가 사람 언어 습득
챗GPT, 긴글 써 주는 게 강점
사람이 개입하거나 피드백 이용
강화학습이 오픈 AI 진짜 혁신
국내 서비스는 그 부분이 약해
10년후 ‘오픈 AI’ 같은 회사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냐고요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을 것”
장병탁(60)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인공지능(AI) 열풍이 불 때마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1980년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시절부터 컴퓨터의 자연어 처리 기술을 연구해 온 장 원장은 국내 AI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등장해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AI가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기 시작해 관련 학술 행사들도 줄을 이었다. 그 당시 장 원장은 많은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챗GPT 출시 이후 장 원장은 또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제2의 AI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또다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AI 연구뿐 아니라 AI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는 장 원장을 지난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공원 내에 있는 연구원장실에서 만났다.
―새 학기가 개강했다. 서울대에서 챗GPT 등 생성 인공지능(AI) 관련 가이드라인을 정했나.
“일단 서울대는 AI 활용을 무조건 금지한다는 방침은 아니다. AI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수업에서 본인의 것으로 소화한 것인지 확인하며 토론도 하고 있다. 챗GPT를 통해 질문을 많이 던져보면서 똑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게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챗GPT로 AI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커졌다. 전문가로서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이제 AI 초보도 데이터를 많이 모으고 컴퓨팅 파워가 있으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일반인들도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산업적으로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 AI가 유료화 모델을 만든 게 의미가 있다. 유튜브·넷플릭스 등 추천 알고리즘에 AI가 다 스며들어 있다. 넷플릭스는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렇지만 AI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오픈AI는 현재 이용료 수준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검색광고 시장 등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앞으로 검색 유저 인터페이스는 대화 형식으로 완전히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기계의 언어를 배웠는데 이제 기계가 사람의 언어를 습득하는 시대가 됐다. 검색 엔진도 나중에는 몇 개만 살아남은 것처럼 달라진 환경에서 관련 비즈니스에서도 새로운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한국의 포털 서비스 회사들도 한국형 챗GPT를 내놓는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나.
“챗GPT가 잘하는 건 긴 글을 써 주는 것이다. 아직 사람과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연설문을 써주거나 여행계획을 짜주는 것을 이용자들이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내놓은 서비스는 그 부분이 약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챗GPT의 가장 큰 특징은 글 작성 능력이라고 봐도 되나.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챗GPT는 사람이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연설문을 작성한다고 하면 AI는 사람이 잘 쓴 글을 몇 가지 유형으로 공부한다. 챗GPT가 달랐던 점은 학습하는 중간에 사람이 개입한 것이다. 이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다른 회사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과 같이 사람이 질문하고 답변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한다. 지식인 같은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오픈 AI는 사람의 노동력을 통해 이를 만들었다. 중간에 사람이 개입하거나 사람의 피드백을 이용해 강화 학습을 하도록 한 게 오픈 AI의 진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통한 학습이 챗GPT의 차별화되는 지점인가.
“학습을 진행하고 상용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기계로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머신러닝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이루다’ 사태가 있었는데 오픈 AI는 챗GPT가 이상한 말을 하지 않도록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걸러내는 작업도 했다.”
―미국 회사들이 많이 앞서가고 있는데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한국의 전략이 있나.
“챗GPT 다음으로는 ‘임보디드(embodied) AI’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챗GPT가 똑똑하지만 한계는 여전히 ‘글자 놀이’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GPT-4에 사진 인식 정도가 추가됐다. AI 로봇을 만들면 느끼는 촉감·온도 등도 모두 데이터가 될 수 있다. 물리적인 세계와 합쳐지게 되는 것이다. 몸을 가지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AI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개발되면 제조업 분야에서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임보디드 AI를 하지 않나.
“구글도 AI 로봇을 만드는 시도를 했었고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사실 많이 하는 연구는 아니다.”
―텍스트만이 아닌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는 멀티모달이 나아갈 길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맞다. 네이버·LG 등 한국 기업들도 멀티모달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텍스트 모델은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의 인공지능 투자나 개발 속도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는 잘했다. 기초과학이 발달한 일본보다도 더 잘했다. 하지만 여전히 10년 후에 한국에서 오픈 AI 같은 회사가 나올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한국에서 알파고나 챗GPT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근본적으로 보면 결국 인재 문제다. 딥마인드나 오픈 AI는 훌륭한 인재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라는 인식이 있고 투자가 붙는다. 지금 한국에서는 스타트업들에 투자를 하면 압박이 많은데 기다려주는 투자 문화도 필요하다. 사실 아직 한국에서 성공 사례가 별로 없다. 경험이 한 번 만들어지면 잘 될 수 있는데 경험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제조업의 성공 공식과는 크게 다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대부분 할 수 있는 일반인공지능(AGI)은 가능한가.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임보디드 AI도 일반인공지능의 일종이다.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연구자로서 추구하고 있다.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푸는 인공지능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많은 문제를 푼다는 의미에서 일반인공지능은 가능한 개념이다.”
대학 3학년부터 30년 이상 AI 한길… 2020년 연구원 생긴 이후 줄곧 원장
■ 장 원장은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지난 2020년 12월 연구원이 생긴 이후 줄곧 원장을 맡고 있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교내에서 인공지능(AI)연구원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대학 3학년 때부터 30년 이상 AI를 연구해 온 장 원장이 원장 적임자로 꼽혔다. 장 원장은 자연언어 처리를 주제로 한 학부 논문을 써서 1986년 정보과학회 우수논문상을 받았고 ‘한국인지과학회’와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의 회장직도 맡은 바 있다.
서울대 AI연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AI’ ‘모든 학문을 위한 AI’ ‘모든 산업을 위한 AI’를 지향한다. 특히 산업에 활용될 수 있도록 산학협력을 많이 추진해 왔다. 네이버·카카오·CJ·녹십자 등이 서울대 AI연구원과 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서울대 AI연구원은 올해 새집으로 이사한다. 고 김정식 해동과학문화재단 이사장(대덕전자 회장)이 2019년 첨단 AI 연구를 위해 500억 원을 기부했고 올해 9월 해동첨단공학관이 준공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의 기부는 서울대 AI연구원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 원장은 “새로운 건물에 입주하면 서울대 AI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학제를 뛰어넘는 연구가 실제 쉽지 않은데 AI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구원 설립 당시 겸무 교수 모집에 300명 가까운 교수가 몰렸고 공학뿐 아니라 인문학·자연과학 전공 교수들도 AI연구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경북 문경 출생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석사 △독일 본(Bonn)대 컴퓨터공학 박사 △독일국립정보기술연구소(GMD) 선임연구원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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