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킹, 이혼→11년째 독수공방…”가장 자격 없었다” (‘특종세상’) [종합]
[OSEN=유수연 기자] 혼혈 가수 제임스 킹이 근황을 전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양주 출신 혼혈 1세대 트로트 가수 제임스 킹이 등장했다.
이날 제임스 킹은 단출한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혼자 생활한 지 11년이 다 되어갔다는 그는 “텔레비전과 함께 식구다. 안 틀어놓고 밥을 먹으면 너무 외롭다. 사람 소리가 있어야 밥이 들어간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2012년 정식으로 데뷔한 제임스 킹은 혼혈 1세대 트로트 가수로, 첫 데뷔 무대는 다름 아닌 야간 업소였다. 그는 ‘혼혈’ 가수로서의 국내 활동이 쉽지 않았다고 밝히며 “한국 노래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무대에 섰다”라며 “미국에서 데려온 가수로 만들었다. 우리는 외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온 외국 가수여야 했다”고 고백했다.
바쁜 일정을 마친 제임스 킹은 낯선 골목길을 배회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데, 가족에게는 힘들다. 제가 못해줬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해서 아들과 딸에게 불쑥 나타날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고 좀 허탈하다”라며 눈물을 흘려 사연을 궁금케 했다.
이날 밤, 그는 용기 내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제임스 킹은 “나만 나가는 조건으로 이혼을 했다. 왜냐면 내가 (가장의) 자격이 없으니까”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내가 버거워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잠시 벗었다가 들어오라고 했는데, 이십몇 년째 제가 못 들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9살에 결혼 후 두 자녀를 뒀다는 제임스 킹은 “자녀들이 ‘아빠 누가 놀려’라고 하면 잘 설명하고 보듬어 줬어야 했는데, ‘어떤 놈이야?’했다. 그때부터 어긋난 거 같다. 막상 만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뭐라고 말을 해야 우리 아들의 상처가 치유 될까 싶다”라며 아들이나 딸에게 모질다기보다는 책임감이 좀 없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참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딸과 한 카페에서 만난 제임스 킹은 그간 아들이 가지고 있던 불만을 전해 듣기도 했다. 제임스 킹은 “모두 내 잘못이다”라며 인정했고, 딸은 “준영이(아들) 전화 받을거다. 아빠가 한번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라”고 조언했다.
선배 혼혈 가수 박일준과 만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일준은 그에게 “(아들과) 대화가 필요하다. 네가 자꾸 다가가라. 아빠에 대한 건 남자이기 때문에 풀 수 있다. 소주 한잔이라도 먹으면서 풀어라”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제임스 킹은 극적으로 아들과 통화 연결, 드디어 10년 만에 만남을 가지게 됐다. 그는 “아빠에게 어렸을 때 서운한게 많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 킹은 “아빠가 잘 되면 우리 자식 잘 챙겨야하지,하는 마음은 너희를 낳고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 지 난 몰랐다. 이제 돌이켜 보니, 네가 어디가 간지러우면 긁어줄 수 있어야 하는 아빠가 됐어야 했는데, 그런 기본적인걸 내가 못했다”라고 사과했다.
아들과 화해한 그는 “만약에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더 책임감 있고 더 멋진 아빠로서 모습이 만들어졌을 때 그때 가정 살림을 꾸리고 싶다”라며 다짐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천재 디자이너 황재근의 근황과 그의 사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황재근은 최근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다는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이 아파서 일에 대한 마음이 주저하게 됐다. 손가락 때문에 디자인을 조금 놓게 된 것 같다. 더 아프면 안 되지 않나. 황재근의 디자인 철학이 이 손가락이었다”라며 씁쓸한 마음을 털어놨다.
더불어 황재근은 가슴 아픈 과거를 털어놓기도 했다. 어머니의 묘를 찾은 그는 “어머니도 결혼하시기 전에 패션 디자이너셨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굉장히 멋쟁이셨고, 자식들에게 항상 좋은 옷을 사주셨었다”라며 “제가 형편이 넉넉해서 유학을 간 게 아니었는데, 꼬박꼬박 생활비도 보내주셨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유학 당시) 어머니는 시차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항상 밤이나 새벽에 전화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시간에 큰누나에게 전화가 와서 ‘어머니가 의식이 없으니 네가 와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라며 어머니의 임종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그런데 푯값이 없었다. 한 달 생활비가 100만 원이었는데, 왕복이 200, 300이었다. 그래서 어쩌지, 하다가 반 애들 중에 일본 준재벌 집 아들이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데 가서 사정을 말해서 돈을 빌렸다”라며 “표를 사고 한국에 왔는데 이미 장례식이 다 끝났더라. 그래서 집에 갔는데 어머니는 없고 어머니 사진만 있어서 정말 많이 울었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yusuou@osen.co.kr
[사진] MBN '특종세상'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