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왜 못 막는 걸까?[뉴스레터 점선면]

김지혜 기자 2023. 3.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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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원전 4호기 수조에서 핵연료를 꺼내는 노동자들의 모습. 도쿄전력 제공

※뉴스레터 점선면 3월22일자(https://stib.ee/HaF7)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독자님, 미세먼지로 가득한 초봄 잘 견디고 계시는지요?

국경을 넘어 날아든 미세먼지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어느덧 또 다른 불안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어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이르면 4월부터 바다에 방류되기 시작하거든요.

일본과 바다를 공유하는 우리 국민은 걱정이 커질 수밖에요. 최근 열린 한일정상회담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적극 반대하지도,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를 유지하겠다는 확인을 받지도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오염수는 “과학적인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일본 정부의 구멍 뚫린 논리와 이기적인 행태에서 신뢰를 얻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꾸준히 예측돼 왔고요. 이 예고된 재난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걸까요? 아니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무슨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요? 과학 담당 이정호 기자·주간경향 송진식 기자와 함께 알아 봅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에 진짜 버립니다. 이제 곧!

· 2011년 3월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원자로에는 지금까지도 처리하지 못한 고열의 방사능 잔해물이 남아 있어요

· 이 잔해물을 식히기 위해 도쿄전력은 지난 12년간 끊임없이 냉각수를 부어왔어요. 여기에 원자로 건물 등을 타고 내린 빗물, 지하수 등이 섞여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만들어집니다.

· 여태까지 일본은 철제 저장탱크를 지어 거기에 오염수를 보관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용량이 한계에 달했다며 후쿠시마 앞바다에 내보내겠다는 거예요.

· 약 130만t의 방사능 오염수가 올봄 혹은 여름쯤 바다에 방류됩니다. 방류는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예정이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 그냥 내버리겠다는 건 아니고요. 다핵종제거시설(ALPS)이라는 정화 장치를 이용해 오염수에 포함된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오염수 방류는 일본과 바다를 공유하는 한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해양 생태계 파괴와 함께 당장 식탁 위에 오르는 수산물 안전이 우려됩니다.

· 예상 못 한 일은 아닙니다. 일본은 이미 2011년과 2013년 후쿠시마 앞바다로 오염수를 흘려보내 논란을 빚었고, 2018년부터 방류 계획을 시사하다가 2021년 4월 바다 방류 방식을 확정했습니다.

· 원전 사고 이후 12년, 이 예고된 비극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정부는 올해 봄과 여름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핵종이 포함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일련의 ‘처리’를 거쳐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1. 정화했다는데 괜찮지 않나?

후쿠시마 오염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친 후 바다로 방출된다고 해요. 일본은 ALPS로 거른 오염수를 ‘처리수’라 부릅니다. 오염수에 담긴 방사성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해 안전하다는 의미로요.

그런데 ALPS에는 일본도 인정한 한계가 있어요. 방사성 주요 핵종 중 하나인 삼중수소(트리튬)를 거르지 못한다는 겁니다. 일본은 삼중수소를 기준치의 40분의 1로 희석해 방류할 것이니 안전하다고 주장해요.

하지만 희석이 삼중수소의 절대량을 줄이진 못해요. 이정호 기자는 “방사선의 독성은 역치가 없다”는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 교수의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기준치’란 용어가 무의미하게 방사선은 극소량만으로도 인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일본 원자력자료연구실의 마쓰쿠보 하지메 사무국장도 과거 인터뷰에서 “삼중수소는 유전자에 붙기 쉬운 성질이 있어서 약한 방사성 물질이라도 몸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말한 적 있어요.

2.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믿을까?

오염수에는 삼중수소 말고도 세슘, 스트론튬, 코발트 등 인체에 치명적인 주요 핵종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의 주장은 ALPS가 이들을 모두 ‘처리’해준다는 거고요.

2021년 도쿄전력은 ALPS로 정화를 마친 ‘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전에, 64개의 방사성 핵종이 기준치 이하로 제거됐는지 확인하겠다고 했어요. (그마저도 최근 64개가 아닌 30개 핵종만 평가하겠다고 방침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그 확인, 누가 할까요? 일본이 합니다. ALPS의 성능 확인은요? 일본이 합니다. ALPS를 거치기 전과 후, 오염수와 이른바 ‘처리수’의 성분을 다른 나라 과학자가 직접 살필 방법은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사실상 없습니다.

일본은 ALPS를 거치기 전후 오염수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불완전하게 공개된 데이터는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과학적으로 모순된 경우가 많고요.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국이 소속된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과학자 자문단은 지난 1월 “도쿄전력이 공개한 후쿠시마 오염수 수조 데이터는 주요 데이터가 빠져있고, 내적 모순이 있는 편향된 정보”라고 비판했습니다. 신뢰를 갖기 힘든 상황이죠.

ALPS의 ‘처리’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어요. 도쿄전력은 ALPS를 한 차례 거친 오염수(이른바 ‘처리수’) 약 130만t을 저장탱크에 보관해 뒀습니다. 그런데 ‘처리수’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이 중 약 70%는 이미 방사성 기준치를 넘긴 상태입니다.

현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장려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중입니다. 이 검증이 끝나면 곧 바다 방류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요.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가 확인한다는데, 이것으론 부족한 걸까요? 그 이유는 아래에서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왜 하필 바다 방류인데?

일본은 오염수가 담긴 저장탱크를 치워 원전의 부지를 확보해야 폐로(원전의 완전한 철거)가 가능하다며, 해양 방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장탱크를 대체할 방법은 다양합니다. 예컨대 PIF는 2016년부터 내진 수조를 만들어 오염수를 60년 이상 장기 보관하거나 오염수를 콘크리트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방법 등 ‘타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여러 대안들을 일본 정부에 제안했어요.

일본이 여러 대안 중에서 바다 방류를 택한 이유는 뻔합니다. 처리 비용이 가장 적게 들거든요. 환경 정의 대신 가장 값싼 선택지를 고른 셈이죠.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 오염수를 저장하는 탱크 1000여기를 공중 촬영한 사진. 후쿠시마 | EPA연합뉴스

4. 한국 정부는 여태 뭐 했을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에 일어났죠. 일본이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공식화한 것은 2021년이지만 사실은 사고 직후부터 그런 낌새는 꾸준히 감지돼왔어요.

이후 10년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사이 정권도 여러번 바뀌었지만 ‘방관의 태도’ 면에선 큰 차이는 없었어요.

바다 방류가 공식화된 2021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적 대응’을 주문한 적이 있긴 합니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를 시사하는 말이었죠.

실제로 이행되진 않았습니다. 법적 대응을 위해서는 오염수와 관련된 연구와 평가를 축적하고 일본의 방류법에 대한 과학적 문제점 등을 꼼꼼하게 수집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국민에게 밝힌 바는 없습니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한국 정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국민이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과학적인 검증이나 분석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적 없다”고 비판합니다.

5. 지금 정부는 뭐 하고 있나?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근거로 투명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중시하고 싶다.”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일한의원연맹 측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오염수 문제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인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후쿠시마에서 방류하는 오염수가 한국 근해에 도달하기까지는 4~5년 정도 걸리며, 이로 인해 늘어날 삼중수소는 극미량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연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뤄졌다면 걱정할 게 없겠죠? 하지만 문제는 이 시뮬레이션이 “ALPS가 오염수의 주요 핵종을 모두 걸러내고, 삼중수소는 희석하면 안전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준용한 채 이뤄졌다는 거예요.

“오염수가 과학적·객관적으로 안전하며, 국제법·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처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검증해 나갈 것이며….”

최근 국무조정실 등이 내놓은 보도자료 속 한 문장입니다. 이정호 기자는 ‘처분’이라는 단어에서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봅니다.

그는 ‘처분’이라는 단어가 “오염수를 얼른 바다에 내보내고 싶어하는 일본 정부의 이해와 들어맞는 개념”이라고 해석합니다. 오염수를 ‘처분’ 대신 ‘저장’할 것을 주장하는 방류 반대론자들과 달리 한국 정부는 이미 “오염수 방류를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6. 이제는 막을 수 없나?

지금 시점에서 오염수 방류를 사전에 저지할 방법은 없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회의적입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긴급하게 방류를 막을 수 있는 ‘잠정 조치’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내려지는데 그 제소권은 국가만이 갖고 있다”면서 “현재 한국 정부는 제소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결과를 기다려 보면 어떨까요?

IAEA 국제검증단은 지난 1월 “방류 전 오염수 처리 등이 적절하게 되고 있는지 점검하겠다”며 현지 조사를 벌인 뒤 “3개월 내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류에 앞서 IAEA의 최종 보고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IAEA가 ‘믿는 구석’이 되진 못해요. 일본은 IAEA에 내는 예산 분담금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대표적인 원전 강국입니다. IAEA는 원전 산업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하는 국제기구로서 일본에 우호적인 결론을 내릴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이번 국제검증단의 구성 자체가 “오염수 처리의 안전성과 방류를 승인하기 위해 기능하는 절차”라는 지적도 있어요. 애초에 검증 자체를 일본이 IAEA에 먼저 요청한 것이기도 하고요.

IAEA는 이미 2020년 일본이 제안한 오염수 해양 방류 방안을 검토한 후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타당한 방법론에 기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죠.

송 변호사는 “방류의 원천 차단은 어렵더라도 늦게나마 방류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사법적 대응과 외교적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일본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사성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한 뒤 바다에 내보내겠다고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삼중수소는 아예 거르지 못하는 데다 ALPS의 ‘처리’ 능력 역시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오염수 방류는 어느 정도 예고된 사태인데도 한국 정부는 별다른 조치 없이 10여 년을 흘려보냈습니다. 현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지금 시점에서 오염수 방류를 사전에 저지하긴 힘들어 보여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고된 재앙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왜 막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물론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도덕성 결여가 가장 큰 문제겠죠. 한국 정부도 안일했어요.

이정호 기자는 영화 <돈 룩 업>을 떠올리며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당면한 문제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고 말합니다.

원전 사고로 발생한 막대한 양의 오염수를 앞으로 수십 년간 바다에 내다 버리겠다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초유의 결단은 어떻게 내려지게 된 걸까요? 여기에 관여한 복잡한 맥락과 관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2주기를 앞둔 지난 3월9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탈핵행동의날 집회 후 행진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 오염수 막으려면 탈핵해야 한다고?

“오염수 투기를 진정으로 반대하려면 ‘탈핵’을 전제해야 한다.” 녹색연합 공동대표인 조현철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의 주장은 이 같은 성찰을 통해 나왔습니다.

‘굳이 탈핵까지?’ 의문을 가지실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장악한 원전 산업의 영향력이 오염수 방류를 막지 못한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3월1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국, 중국 등을 포함한) 세계 많은 원자력 관련 시설이 삼중수소를 포함한 액체 폐기물을 해양 등에 방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일까요? 네, 맞는 말입니다.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기술적 관점에서 국제관행에 부합한다”고 말한 이유죠.

물론 대부분의 원전에서는 잘 통제되고 관리된 환경에서 오염수가 발생하고 처리됩니다. 수습되지 못한 사고 현장에서 만들어져, 검증되지 않은 환경에서 처리되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다른 원전의 사례와 동일 선상에 둘 순 없어요.

하지만 ‘원전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을 당연한 ‘관행’ 취급하는 세계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만 유독 “결사반대!”를 외치는 건 명분상으로도 실리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일찌감치 ‘세계 최고의 원전 강국’ 미국과 ‘원전 산업 수호 기구’ IAEA가 일본 편을 들고 나선 것은 명분이나 실리면에서 모두 예상된 일이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죠.

문제는 한국 역시 ‘원전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게 당연한’ 세계의 일원이라는 겁니다. 바로 옆 나라에서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대도 적극적으로 막아서기가 어려운 이유예요. 송진식 기자는 기사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오염수 방류를 방관하거나 찬성하는)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바로 원전(핵) 강국이고 내부 의사결정 과정도 ‘원전 마피아(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서로 공격해봐야 본인들의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에 오염수 방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오염수 방류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죠. 송진식 기자는 “오염수 방류에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국내 핵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는 취재 후기를 전했습니다.

2. 내 나라에서 내가 버리겠다는데

“우리는 주권국가입니다.”

2020년 11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기 전 한국 정부 등과의 협의가 필요하지 않냐는 취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 바다에 오염수를 버리겠다는데 한국이 무슨 상관이냐는 겁니다. 만약 바다가 국경에 맞춰 예쁘게 쪼개져 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같은 영향력 등이 큰 국가의 주권적 결정을 제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요. 송진식 기자는 이 문제를 오염수 방류를 막지 못한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꼽기도 했어요.

물론 힘이 센 나라라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죠. 국제사회를 규율하는 국제법이 있잖아요. 전문가들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이 “해양오염이 자국 밖에서 확산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해양법협약 194조 2항에 어긋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도 현실은 ‘법대로’ 굴러가기가 어렵습니다. 환경문제의 특성상 인과관계의 입증이 어렵다는 법리적 한계와 외교 관계 등의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환경 문제에 대해 실제로 국가 책임이 추궁된 사례도 드물고, 그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에도 주변국 어느 국가도 구소련을 상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었죠.

*오선영, <초국경적 환경피해에 대한 구제방법 등에 관한 소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하여> 참고

3. 바다엔 원래 뭐 버려도 되잖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통해 자연에 대한 착취를 당연시해 온 인간 문명을 뿌리부터 성찰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해양 자원은 얼마든지 인간이 착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국제 관행이 자리 잡은 배경에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 세력뿐 아니라, 바다를 인간을 위한 쓰레기장으로 취급해 온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오염 물질을 희석해 바다에 버리면 안전하다.’ 일본 정부와 원전 산업이 공유하는 이 논리에 대해 조현철 교수는 해양생물학자이자 생태사상가인 레이첼 카슨의 주장을 인용하며 아래와 같이 반박합니다.

“바다 유기체에 흡수된 오염 물질은 체내에서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이때 유기체는 ‘생물학적 증폭기’로 작용하여 오염 물질의 농도 증가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 그래서 카슨은 ‘오염 물질의 희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술적 주문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바다에 버린 오염수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생태계의 복잡다단한 관계망” 때문입니다. 생태계는 인간이 마음대로 판단하고 규정지어 소비하고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버려도 되는 지구’를 상상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원자력 발전이 가동된 지 약 45년이 흘렀지만 우리나라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마련하는 절차의 첫발조차 떼지 못했습니다.

봄 혹은 여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우리는 밥상에 올라오는 수산물과 어패류의 안전부터 걱정하게 될 거예요. ‘인간중심주의’ 같은 막연한 세계관이 당장의 저녁 반찬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현실화된 데에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도덕적 결함 등 겉으로 드러난 요인 외에도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를 장악한 원자력 산업의 영향력, 강대국의 가해 행위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국제 정치의 한계, 자연에 대한 착취를 당연시해 온 인간 중심주의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세 줄 점선면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발생한 오염수가 이르면 4월부터 바다에 방류되기 시작합니다.

· 일본은 오염수의 방사성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한 뒤 바다에 내보내겠다고 하지만, 그 ‘처리’ 능력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입증이 부족합니다.

· 오염수 방류가 인류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이 계획이 현실화된 데에는 일본 정부의 도덕적 결함뿐 아니라 세계가 공유해 온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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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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