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코로나 백신에서 면역 증강제까지, 담뱃잎이 만든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3. 3. 24. 06:02 수정 2023. 3. 24. 10: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면역증강 사포닌 생산 경로 규명
효소 유전자를 담뱃잎에 넣어 사포닌 생산
코로나 백신도 담뱃잎으로 생산, 허가받아
대량재배 쉬워 백신 생산 비용, 기간 줄어
캐나다 바이오기업인 메디카고의 담배 재배 시설. 담배에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를 넣어 재배하면 백신에 쓸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백신에 이어 면역증강제까지 담배로 생산했다./Medicago

담뱃잎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잎에서 백신용 바이러스 단백질을 생합성한 데 이어 면역반응을 높이는 면역증강제까지 만들어냈다. 담뱃잎은 빨리 자라고 재배가 쉬워 의약품 생산 기반이 약한 저개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의 민간연구소인 존 인스 센터(John Innes Centre)의 앤 오스본 박사 연구진은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면역증강제인 사포닌을 담뱃잎에서 생합성했다”고 밝혔다.

◇나무의 사포닌 유전자를 담뱃잎에 넣어

제약업체들은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에서 자라는 ‘키라야 사포나리아(Quillaja saponaria)’라는 학명(學名)의 식물 줄기에서 사포닌을 추출해 백신과 함께 투여하는 면역증강제로 썼다. 사포닌은 백신이 유도하는 면역반응을 강하고 오래가게 한다. 키라야 나무에서 추출하는 사포닌인 QS(Quillaja Saponin) 중 QS21은 대상포진과 말라리아 백신에 쓰이고 있으며, QS7과 QS17은 코로나 백신에 들어갔다.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에서 자라는 ‘키라야 사포나리아(Quillaja saponaria)’라는 학명(學名)의 식물. 비누껍질나무로도 불리는 이 식물 줄기에서 백신의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사포닌이 나온다./John Innes Centre

연구진은 키라야 나무의 사포닌 생산에 효소 16개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효소 16개가 핵심 교두보 역할을 하는 분자를 만들면, 나중에 QS21이 된다. 또 효소 3개가 더 작용하면 코로나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는 QS7이 만들어진다.

오스본 박사는 이번에 밝힌 사포닌 생합성 경로를 키라야 나무가 아닌 담뱃잎에서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키라야 나무는 10년 이상 자라야 사포닌을 생산할 수 있어 전 세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담뱃잎은 한 달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자라 대량 생산이 용이하다.

연구진은 키라야 사포닌 생산에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 14개를 토양박테리아를 통해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에 주입했다. 호주 원산지인 이 식물은 연초를 만드는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과 같은 담배속(屬) 식물이다.

시험 재배 결과 담뱃잎 1g 당 QS7 7.9㎍(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분의 1g)을 추출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5일간 담배 410그루에서 총 11㎎(밀리그램, 1㎎은 1000분의 1g)의 QS7을 얻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키라야 나무에서는 효소 16개가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핵심 분자를 합성한다. 여기서 대상포진, 말라리아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들어가는 키라야 사포닌(QS)21이 만들어진다. 효소 3개가 더 작용하면 코로나 백신에 쓰이는 키라야 사포닌(QS)7이 나온다./Science

◇담뱃잎으로 백신 제조 시간, 비용 줄여

담뱃잎은 이미 코로나 백신 생산에 활용됐다. 캐나다 바이오기업인 메디카고(Medicago)와 영국 제약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지난해 2월 세계 처음으로 담뱃잎으로 만든 코로나19 백신 ‘코비펜즈(COVIFENZ)’를 캐나다에서 승인받았다. 메디카고는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에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넣어 바이러스 유사입자를 생산했다. 여기에 GSK의 면역증강제를 함께 썼다.

메디카고가 담뱃잎에서 추출한 입자는 겉모양은 바이러스와 똑같지만, 유전물질이 없어 인체에 들어가도 복제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전성이 높다.

더 큰 장점은 속도이다. 독감 백신처럼 달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백신을 만들면 6개월이 걸리지만, 담뱃잎 백신은 6주면 된다. 유전자 합성 방식인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도 생산 속도가 비슷하지만, 대량생산은 식물 재배가 훨씬 쉽다.

담뱃잎 백신은 기존 백신처럼 병원성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 식물에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신 제조 비용의 85%가 생산보다 추출과 정제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담뱃잎 백신은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담뱃잎 코로나 백신은 담배 회사들이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메디카고는 스위스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의 투자를 받았다. 영국 담배 회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도 미국 자회사인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KBP)과 담뱃잎으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백신도 2020년 12월부터 미국에서 임상 1,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 백신에 이어 함께 투여하는 면역증강제 사포닌까지 모두 담뱃잎으로 생산한 것이다.

담뱃잎에 키라야 나무의 사포닌 합성 효소 유전자 14개를 주입했다. 그러자 담배 410그루에서 5일간 코로나 백신에 쓰는 면역증강제인 키라야 사포닌(QS)7을 11㎎ 얻을 수 있었다./Science

◇코로나 치료제 만드는 농업 파밍

담뱃잎 백신, 면역증강제는 농작물과 가축을 이용해 치료제를 만드는 이른바 파밍(pharming, 분자농업)의 성과다. 파밍은 약(pharmaceutical)과 농업(farming)의 영어 단어를 합친 말이다.

담뱃잎을 이용한 파밍은 이미 효능을 입증했다. 일본에서는 독감 백신을 담뱃잎에서 만들었고, 국내에서도 바이오앱이 돼지열병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을 세계 최초로 담뱃잎에서 생산했다.

담뱃잎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 KBP와 메디카고는 2014년 에볼라 치료제인 ‘지맵(ZMapp)’ 개발에도 참여했다. 지맵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세 가지 종류의 항체로 이뤄졌는데, 모두 벤타미아나종 담뱃잎에서 생산했다. 2018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연구진은 노로바이러스 백신을 담뱃잎에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노로바이러스는 매년 7억명이 감염되고 그중 2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번 연구진은 키라야 나무의 사포닌 생합성 경로를 밝힌 기초연구 성과를 토대로 담뱃잎에서 대량생산하는 방법까지 성공시켰다. 기초연구에서 응용개발까지 성공한 것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투-투이 당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생합성 경로가 완전히 밝혀지고 다른 식물에서도 생산할 수 있게 된 소수의 식물 천연물에 QS7을 추가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스본 박사 연구진은 “키라야 나무의 유전자 해독 결과가 사포닌 합성경로를 밝히고 다른 식물에서 이를 생산하도록 하는 ‘사용 설명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3727

Science, DOI:https://doi.org/10.1126/science.adg8823

Nature Medicine,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1-01370-1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