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日 오모테나시에 홀린 尹 정부 외교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23. 3. 24.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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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얽힌 오무라이스…외교적 소품으로 활용하는 상상력 부재
"호텔 직원 박수" 자화자찬…日 '극진한 접대'도 겉과 속 다른 것 몰라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역사 강사가 방송에 출연해 오무라이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한일 정상의 최근 오무라이스 만찬 회동을 꼬집으면서 한 말이다.

이에 따르면 오무라이스는 19세기 말 일본 오사카에 살던 중국 광둥성 출신 노동자가 원조 격이다. 처음엔 일본인들이 느끼하고 맛이 없다고 하자 그의 조선인 아내가 기지를 발휘해 계란을 빼서 밥 위에 덮은 게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음식의 유래가 대개 그렇듯 이 주장이 꼭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음식이라도 흥미로운 서사가 더해지면 맛과 인기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정상의 오무라이스 만찬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년시절 추억이 돋는 식당을 찾은 것 자체를 뭐라 할 순 없다. 공공외교로서 잘 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왕에 그랬다면 단지 음식만 즐길 게 아니라 고도의 외교 이벤트로 승화시켰다면 어땠을까.

"오무라이스는 일본이 아시아 침탈을 시작한 불행했던 시절 한국과 중국 노동자가 일본 땅에서 버무려낸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함께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한중일 얽힌 오무라이스…외교적 소품으로 활용하는 상상력 부재

1박2일 간의 일본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7일 경기 성남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 간 쓸개 빼주듯 양보했지만 이런 뼈있는 말이라도 잊지 않았다면 귀국길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일본 메이지 시대 사상가 오카쿠라 덴신의 말을 인용한 것은 더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일각에선 그를 '아시아론자'로 평하며 정한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나 이는 그냥 궤변이다.

윤 대통령은 차라리 조선 유학자 강항을 소개하는 게 천배만배 나았을 것이다. 한일관계 재출발의 의미로 역사 속 인물을 소환할 의향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강항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 조선의 성리학을 전수했고 '간양록'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아들과 딸이 눈앞에서 왜군에게 살해되는 참혹상을 체험했다. 그 적개심에 치를 떨며 일본에 동화되길 거부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불구대천 원수의 땅에 유학의 씨를 뿌렸다.

강항의 제자가 일본 유학의 시조로 불리는 후지와라 세이카로서 야만적 무력이 횡행하던 일본에 '인의예지'를 전파했다. 에도시대 200여년 조선과 일본의 선린관계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다.

"호텔 직원 박수" 자화자찬…日 '극진한 접대'도 겉과 속 다른 것 몰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정상회담 뒤 2차로 만찬을 하는 도쿄 긴자의 경양식집인 렌가테이에 식당 역사를 소개하는 글과 음식 사진이 보인다. 연합뉴스

일본은 여전히 감당하기 힘든 대국이고 외교력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외무상 재임시 위안부 협상으로 우리에게 이미 한 차례 굴욕을 안겨준 베테랑이다. 윤 대통령이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 하나 챙긴 것 없이 명분도 실리도 자존심까지 탈탈 털리고 온 방일 결과를 결코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호텔 직원들이 박수 친 사실을 거론하며 일본의 마음을 열었다는 식의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설마 호텔 박수 소리 정도에 홀려 오판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오모테나시'는 '극진한 접대'를 뜻하지만 그마저 겉(다테마에)과 속(혼네)이 다름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만약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뻔뻔한 국민 기만이다. 대통령실은 오히려 "역사의 큰 흐름, 국제질서의 큰 판을 못 보고 있다"고 훈계조로 말했다.

이런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오무라이스 만찬 등을 외교적 소품으로 절묘하게 활용할 창의력을 기대하기란 애초 무리였다.

그나마 겸허한 반성과 유감 표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도리어 뭐가 잘못이냐는 식의 뻣뻣한 태도다. 가해자가 더 큰소리치는 이웃 국가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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