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과 함께한 50일 [책&생각]

한겨레 2023. 3. 24.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김성호 지음 l 웅진지식하우스(2008)지난겨울 코로나19라는 덫은 용케 잘 피했지만 감기라는 올무에는 꼼짝없이 발목 잡혔다.

시쳇말로 '새대가리'라 하면 머리 나쁜 사람을 뜻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다시는 그런 소리를 못하게 된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삶은 상당히 비슷해 지은이 못지않게 책을 읽으며 새의 생태를 인간 삶에 빗대어 보게 된다.

새의 생태에 인생을 빗대는 것이 비과학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위안과 격려를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김성호 지음 l 웅진지식하우스(2008)지난겨울 코로나19라는 덫은 용케 잘 피했지만 감기라는 올무에는 꼼짝없이 발목 잡혔다. 내내 흐르는 콧물을 훔치며 봄을 미리 겪고 싶어 서가를 뒤졌다. 어차피 책 읽기란 한낱 상상의 그물에 포획되는 것이 아니던가. 꽃이 소란스럽게 피어나기는 아직 먼지라 책으로라도 상춘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다 눈에 번쩍 뜨인 책이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였다. 책을 본 순간 어라, 이 책이 나한테 있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주변에서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얘기를 줄곧 들었는데, 미처 읽지 못했던지라 내가 지금 보기에 맞춤하다 여겼다.

이 책은 지은이가 병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지리산 기슭의 청보리밭을 찾았다가 우연히 큰오색딱따구리가 번식하려고 둥지 짓는 모습을 보고 그 생태를 50일 동안 관찰한 결과물이다. 이 새는 아직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 동물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이 새를 건강한 숲의 지표종으로 삼는다고 한다. 지표종은 특정한 지역의 환경상태를 재는 잣대로 삼는 생물을 가리키는데, 이 새가 사는 숲은 건강한 숲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이 새는 새끼에게 딱정벌레 애벌레를 주로 먹이는데, 이 벌레야말로 건강하고 오래된 숲에서만 산다고 한다. 그러니 이 새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그만큼 오래된 숲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장에 대한 욕망이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를 확인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시쳇말로 ‘새대가리’라 하면 머리 나쁜 사람을 뜻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다시는 그런 소리를 못하게 된다. 짝짓기 전에 먼저 둥지를 틀 나무를 고르고, 둥지의 높이와 위치 그리고 방향을 정하는 게 다 이치에 맞다. 알을 부화하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에서는 수컷의 노력이 상당했다. 먹이를 물어오는 횟수도 암컷보다 많고, 특히 수컷이 밤새 둥지를 지킨다는 관찰 결과는 흥미로웠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삶은 상당히 비슷해 지은이 못지않게 책을 읽으며 새의 생태를 인간 삶에 빗대어 보게 된다.

나이 들어 그러는지 새끼들이 하나의 주체로 성장해 독립해 살아가도록 훈련하는 대목에 감정이입되었다. 알을 낳고 나서 33일이 지나자 수컷은 더는 둥지에 머물지 않았다. 새끼들을 더는 과보호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읽혔다. 먹이를 반드시 교대로 받아먹게 가르치고, 먹이를 주지 않고 안달이 나게 해서 낚아채도록 하기도 했다. 지은이의 말대로 약 올리기와 굶기기로 먹이활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서 둥지를 떠나게 하려는 의도였다. 관찰한 지 50일째 오전 7시52분, 어미 새가 비상하는 순간 둘째 새끼 새가 둥지를 박차고 떠나는 장면을 지은이는 직접 보는 행운을 누렸다. 첫째는 이미 둥지를 떠난 상태였고, 뒤늦게 온 수컷은 이 장면을 보지 못한지라 둘째를 찾아 둥지를 확인하고 나무 전체를 뒤진다. 지은이가 이 장면을 보며 “가슴이 꽉 메며 눈물이 쏟아”졌다는데, 읽는 사람도 같은 심정이 되고 만다. 부모의 삶이란 인간이나 새나 똑같았다.

죽어가는 미루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사진의 배경은 신록으로 가득 찼다. 기대한 대로 미리 봄을 즐기는 데 제격이었다. 새의 생태에 인생을 빗대는 것이 비과학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위안과 격려를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역시 생명은 아름답고 자연은 위대하다.

이권우/도서평론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