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소음 감옥에서 탈출하기

관리자 2023. 3. 2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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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가 농어촌 산골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지금 시대에 소리는 소음이 되고 공해가 되고 감옥이 됐다.

이제 우리는 선을 넘어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못하는 소음의 감옥에 갇혔다.

소리의 감옥에 나를 가두면 세상의 모든 소리는 소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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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과거엔 우리 삶의 동반자
요즘엔 공해·방해로 인식
세상의 소음과 화해하자
마음을 열고 잘 들어보자

봄이 오는 소리가 농어촌 산골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얼었던 땅이 갈라지는 소리, 막혔던 자작나무 혈관 뚫리는 소리, 손꼽아 기다렸던 꽃망울 터지는 소리, 깊은 계곡 얼음장 깨지는 소리, 냇가에 고였던 물 흘러내리는 소리, 알 낳을 둥지를 찾아 헤매는 새소리, 자연은 온통 소리의 화음으로 봄날 공간을 가득 메운다.

늦은 저녁 고라니가 우는 소리마저 감상적으로 들리는 봄날의 소리는 그동안 애태우며 기다렸던 시간만큼 정겹게 다가온다. 소리가 어찌 봄날 농촌 산골의 소리만 있겠는가? 계절과 장소와 상관없이 소리는 우리 삶과 늘 가까이 있었다.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 아낙들의 베 짜는 소리,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 고장과 나라는 희망과 미래가 있는 곳이었다. 동네 골목에서는 아이들 노는 소리와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만나고, 슈퍼에서는 어른들이 모여 한담하는 소리가 일상의 소리였다. 기차에서는 놀러 가는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옆에 앉은 승객들은 반주에 맞춰 손뼉을 쳤다.

동네 어느 집에서 굿이라도 하면 악사들은 엇박자로 무당과 사람들의 흥을 돋웠고, 환갑잔치가 벌어지는 집에는 동네 모든 소리가 모여들었다. 거지의 품바 타령 소리, 소리꾼의 흥겨운 민요 소리, 아낙들의 음식 만들며 맞장구치는 웃음소리, 잔치 음식에 기웃거리는 개 쫓아내는 할아버지의 가래 섞인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모여 잔치에 참여했다. 그곳에는 누구도 그 소리를 듣고 소음 공해 유발이라는 이름으로 고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소리를 살아가는 몸짓으로 이해했고, 삶의 동반자로 인식했다.

지금 시대에 소리는 소음이 되고 공해가 되고 감옥이 됐다. 공장의 기계 소리, 비행기 이착륙 소리, 공사장 장비 소리, 밤새 뛰어대는 윗집 아이들의 무례한 소리, 고속 열차 안에서 사적인 전화로 자신의 일상을 억지로 들려주는 소리, 자전거를 타며 음악을 크게 틀고 지나가는 이기적인 소리, 이런 소리에 우리는 이성이 마비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 소리는 우리에게 공해며, 방해며, 손해로 인식된다. 이런 소리를 우리는 소음이라 부른다. 싸움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참사의 동기가 된다.

소리는 쫓아내야 할 대상이며, 침묵과 정적이 선진국다운 문화라고 인식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선을 넘어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못하는 소음의 감옥에 갇혔다. 나의 귀를 도서관의 소리, 40㏈ 이하로 유지해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40㏈ 넘는 소리가 담장 넘어 들려오면 소음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격추해야 하며, 안되면 백병전이라도 불사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만든 소리 감옥에서 정적과 침묵을 동반자로 살아가는 자발적 죄수가 됐다.

소음과 화해하자. 아이들이 뛰어놀며 웃고 떠드는 소리는 레이다에 걸리더라도 봐주자. 아이의 소리는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소리다. 소음이 아닌 소리로 들어보자.

기차에서 조용히 나누는 엄마와 딸의 대화는 미소로 받아주자. 아줌마·아저씨들이 오랜만에 나선 하루 관광에서 막혔던 울화를 푸는 소리는 이해하자. 종일 힘들게 일하고 회식 자리에서 술 한잔하며 떠드는 직장인의 소리는 양해하자. 소리의 감옥에 나를 가두면 세상의 모든 소리는 소음이 된다. 그 감옥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세상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배려와 관용의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봄날,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마음을 열고 잘 들어보자. 소음을 소리로 전환하여 소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자.

QR코드를 찍으면 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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