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청령포의 봄
‘노산군의 시체가 물에 들어가 둥둥 떠서 흐르지 아니하고 하얀 열 손가락이 떴다 잠겼다 하는 것을 뵈옵고는 시녀들과 종자들이 모두 통곡하고 사랑하는 임금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 들어갔다. 밤에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시체를 건지어 어머니 위하여 짜 두었던 관에 넣어 부중에서 복으로 오리 되는 곳에 평토장을 하고 돌을 얹어 표하여 두었다.(이광수의 ‘단종애사’ 중) 어린 임금 단종의 슬픈 역사는, 그 자체가 충격적이다. 드라마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비극이었기에, 오늘날까지 소설과 연극, 영화로 재연되고 있다. 최근엔 웹소설로도 선을 보여 이야기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그 중 춘원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는 세종과 문종을 모시던 수구파와, 세조를 옹위하던 개혁파 사이의 다툼에서 희생된 단종의 생애를 전한다. 단종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세조의 입장에서 본 소설가 김동인의 ‘대수양(大首陽)’과 대조를 이룬다. 웅장한 전개와 예리한 필체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영월은 단종 애사(哀史)의 가장 중요한 무대다. 임금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는 육지의 섬 같이 사방이 막혀 있고, 이곳을 휘감은 서강의 흐름은 유유하다. 단종의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이 숙연하게 서 있다. 또한 임금이 묻힌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의미를 더한다. 임금의 애달픈 혼과 신하들의 충정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 단종문화제가 내달 4년 만에 다시 열린다는 소식이다.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 선발대회와 단종제향, 야간 단종국장 재현·드론라이트쇼도 펼쳐진다. 어린 임금의 넋을 달래는 행사가 재개돼 다행이다.
문득, 그렇게 충절을 웅변했던 이광수가 훗날 친일 행각을 벌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비극적 사건과 모진 인생으로 점철된 청령포의 봄 풍경이 이렇듯 아름다운 것 또한 모순같아 보인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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