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대통령은 선출된 검사장이 아니다

기자 2023. 3. 24.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치를 잘할 수 있나? 검사다. 검사는 정치인을 수사해봤다. 지방의원, 시장·군수부터 도지사와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까지 다 수사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치를 탈탈 털어 봤다. 그래서 검사만큼 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도 없다. 행정은 누가 잘 아나? 검사다. 9급 공무원부터 장관까지 수사해봤다. 공무원들은 서류만 들여다보지만, 검사들의 수사는 서류 밖의 세상까지도 잘 안다. 금융도 검사들이 제일 잘 안다. 지금까지 금융 부패·부정 수사를 얼마나 많이 했나? 특수부 검사들이 금융 전문가들이 다 됐다. 다른 분야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이관후 정치학자

검사 전성시대다. 장차관급을 포함해 정부 요직과 부처에 파견된 검사만 70여명이고, 참여연대가 밝힌 주요 공직의 검찰 출신은 136명이다. 검사 출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정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수세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여러 경로로 물어서 나온 대답들이 위에 간추린 내용이다.

‘검사는 수사를 하기 때문에 금방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정말 그렇다면, 이제 검사 출신들이 경제와 산업, 부동산 분야에서도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는 것이 꼭 필요해 보인다.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이 안 되고 있는 것도 부정·부패 세력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해서다. 수사하고, 압수수색하고, 기소를 하면, 개혁에 금방 불이 붙을 것이다.

물론 검사들 모두가 이런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김기춘이나 곽상도 같은 공안 검사들이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옛날 얘기다. 민주화 이후 각종 부정·부패를 수사해 나라를 바로 서게 한 곳은 특수부다. 97년 외환위기 때도 특수부가 나서서 재벌부터 금융기관들까지 샅샅이 수사했다. 정권교체가 될 때마다 대통령을 포함해서 전임 정부의 부정을 파헤친 것도 특수부다. 특수부 출신이야 말로 통치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 집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도 검사들이 통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은 미국에서도 검사 출신들인 ‘거버먼트 어터니(Government attorney)’가 정치에 많이 관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미국의 법학자인 마이클 톤리가 2012년에 쓴 논문을 보면, 유럽이나 캐나다처럼 대부분의 국가들(아마 한국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에서 검사들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미국의 어터니들은 다르다. 그들은 파당적이다 못해 이념적 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들 중에서 지명되고, 이들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법적 수단을 통해 언론과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며, 자신들이 맡은 사건들을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결정한다. 우리 대통령은 이 정부가 바로 그렇게 통치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는 셈이다.

철학자가 최선의 통치자라고 비유적으로 말한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그로부터 2500년 뒤에, 특수부 검사가 통치자로 적격이라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것도 인류의 진보인가 싶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진의는 이것이었다. 인간들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요설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수사의 능력이 곧 통치의 역량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검사들은 사적 개인들 간의 충돌에서 공정하고 합법적인 판단을 통한 문제의 해결·조정·합의 등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 사건이 아니라, 법의 위반에 대해 처벌 여부를 따지고 수사하고 기소하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요컨대 검찰이 ‘사회 정의와 인권을 수호한다’면 그것은 최종적 달성되는 결과일 뿐, 실제로 검사들이 하는 일은 방패가 아닌 칼의 역할이다.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 해도, 검찰이 하는 일과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또 이 일을 하는 검찰에서는 상명하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한 판단보다, 기소 이후에는 유죄를 증명하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도 있다. 즉, 검사들은 법을 공격적으로 사용해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기술과 역량은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그 일과 조직문화는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상반된다. 특히 대화, 타협, 공감, 연대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는 검찰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검사들의 통치라고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든 공정한 선거로 뽑힌 사람이라면 통치의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헌법이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면, 이 통치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통치의 주체, 통치의 철학, 통치의 방식에서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이관후 정치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