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꿀벌이 사라진다

기자 입력 2023. 3.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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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과 꿀벌은 입에서 자주 다툰다. 말이 자꾸 헷갈리는 것이다. 꿀이라고 해야 할 때 벌이 나온다. 입술에서 미끄러지는 말이야 내 조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둔한 머리로 단것을 탐하며 살아가는 동안 벌에게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벌꿀, 아니 꿀벌에 대해 검색하면 벌들의 대량실종 사태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재작년 겨울 사이 전국에서 최대 78억마리의 꿀벌이 실종되거나 집단 폐사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벌이 사라지는 건 꿀을 먹고 못 먹고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봄철에 식물 꽃가루받이의 80%를 벌이 담당한다고 한다. 그런 벌이 사라져 버린 결과, 어느 과수농가에서는 이제 사람들의 손으로 일일이 수정을 시켜야 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는 자연의 대단히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는 의미이다. 이건 말 이전의 사변이 아닌가.

시골에서 자랄 때 골목을 같이 쓰는 또래가 있었다. 나보다 딱 한 살이 많았다. 이웃집은 섬돌 옆에 벌을 키웠다. 어느 날 교련복 차림의 그가 지게를 지고 말했다. “벌통을 옮길 때 우짜는 줄 아나. 작대기로 고함을 치며 벌통을 크게 내려치는 기라. 그래야 기절할 듯 놀란 벌이 무슨 육이오라도 난 줄 알고 원래 자리로 안 돌아가는 기라.” 그 집은 대구로, 우리는 부산으로 흩어졌다. 출판에 입문하고 처음 만진 책이 대우학술총서 사회생물학이었다. 벌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어떤 술자리에서 곤충이 화제에 오를 때 믿거나 말거나 저 이야기를 써먹으면 모두 그럴듯하게 들어주었다.

형은 오십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아주 먼 촌수라 말을 대충 놓았는데 그게 불만이라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 적도 있다. 전기 관련 일을 했는데 시를 쓴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몇해 전 벌초 갔다가 큰집에서 뒹구는 유고시집을 하나 챙겨왔다.

봄이다. 산의 입구에서 문명의 폐허인 듯 스산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어김없이 양봉의 흔적이다. 꿀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꽃에서 꿀을 빠는 벌이나 벌 없는 벌통 앞을 지나칠 때면 섬뜩한 뉴스가 떠오른다. 그때 그 형도 생각나서 작대기 대신 지팡이로 내 머리통을 제법 세게 두드린다. 이제 이곳에서의 집착을 놓고 그 어디로 떠나기 위한 예행연습처럼, 벌통 속의 꿀벌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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