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 원주 아카데미와 경동1960

기자 2023. 3.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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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30~40년 전, 비교적 큰 도시엔 아카데미란 이름의 극장이 있었다. 대체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단관극장들이었다. 강원 원주에도 1963년 문을 연 아카데미극장(사진)이 있었다. 그에 앞서 원주엔 원주극장, 군인극장, 시공관, 문화극장도 들어섰다. 이 극장들은 50년 가까이 원주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으며 애환을 함께했다. 그러나 2005년 대기업 복합상영관이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단관극장들은 줄줄이 폐업했고 2006년 아카데미극장도 문을 닫았다. 다른 극장들은 건물마저 철거되었지만 다행히 아카데미극장 건물은 살아남았다.

2010년대 후반, 방치되어온 아카데미극장 건물을 되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지역 문화의 상징 공간이자 의미 있는 근대건축물로, 기억하고 보존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 난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보존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이에 화답하듯 원주시는 2022년 초 극장을 매입했다. 보존 활용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원주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비용, 유지관리비, 위탁운영비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존을 주장하는 측과 철거를 주장하는 측의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있다고 한다. 신중히 판단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정황이라면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용 프로젝트가 중대한 난관에 봉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을 보니, 그동안 여타 지역에서 벌어졌던 근대건축물 보존-철거 논란의 과정과 흡사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어려움 속에서도 보존 활용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한동안 전개된 뒤, 결국엔 철거로 마무리되는, 그런 과정 말이다. 특히 최근의 청주시청 철거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기에 원주 아카데미극장도 결국엔 철거되고 마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더욱 커진다.

물론 원주시와 원주시민들은 더 논의할 것이다. 원주시도 열심히 찬반 의견을 수렴할 것이며 보존론자와 철거론자들은 치열하게 토론을 벌일 것이다. 그 후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판단 기준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이 보존일 수도 있고 철거일 수도 있다.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겠지만, 그럼에도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된다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의 경동1960이 떠오른다. 이곳이 하나의 참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동1960은 오랫동안 방치해온 경동극장의 내부 공간을 스타벅스 카페 매장으로 꾸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곳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도 건물의 외관과 내부를 살려 경동1960처럼 수익을 올리고 동시에 영화 상영도 하고 공연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두고 누군가는 “상투적인 절충안(타협안)”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건 극장이 아니고 그저 카페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보존론자도 있을 것이고, “건물 철거가 원주의 지역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비판하는 철거론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도 필요하지 않을까. 원주시 관계자, 보존론자, 철거론자들이 극장 건물 존치를 전제로 좀 더 전향적이고 창의적인 논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건물을 살려놓은 상태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안이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한 번 철거되면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추억과 낭만. 그렇게 훅 사라진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의 마지막 아카데미극장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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