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푸틴은 어린이를 납치한 유괴범인가

이규화 2023. 3. 24.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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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위험지역 어린이 방치냐 보호냐
제네바협약은 아동 안전지대 설정 규정
ICC 미국과 유럽 주요국엔 종이 호랑이
서유럽 유입 5만~6만 어린이 행방 묘연
객관적이고 정밀한 조사 후에 판단해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아동 강제이주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C는 푸틴의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혐의는 기술하지 않았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장에서 부모나 친척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나 보호시설 수용 고아 등 2000명을 러시아로 이동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숫자가 1만600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양측의 집계는 차이가 있다. 어쨌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이주시킨 것은 명백해 보인다.

아동 이주에 대한 우크라이나 및 서방과 러시아의 시각은 정반대다. 이번 ICC의 영장발부에서 보듯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아동 납치나 유괴와 다름없는 전쟁범죄로 보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보호받지 못해 버려진 아이들을 인도주의 원칙 아래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주시켰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번 영장발부는 명백한 불법이며 법적 효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ICC를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양측의 시각차가 워낙 커서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전쟁터의 위험지역에 버려진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거주지가 파괴되고 식량, 전기, 수도, 난방도 다 끊긴 폐허의 참화 속에 아이들을 그대로 둬야하나.' 전쟁에서는 안타깝지만 어린이 희생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전시에 있어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 제14조는 어린이 보호를 명문화하고 있다. "적대행위 당사국은 각자의 영역 내에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점령 지역 내 부상자, 병자, 노인, 15세 미만 아동, 임산부 및 7세 미만의 유아를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편제되는 병원, 안전지대 및 지점을 설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ICC, 과연 정의의 사도인가

ICC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협약 형태의 기관이다.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강제력이 없다. 피의자 체포는 가입국의 사법공조에 의존한다. 미가입국에는 효력이 미치지도 않는다. 게다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 강대국들은 가입돼 있지 않다. 주로 유럽 국가와 남미, 아프리카 등 123개 국가가 서명했다. 한국도 가입국이다. ICC를 주도하는 국가는 따라서 유럽 주요 국가와 한국, 일본 등이다.

더구나 서방 중심의 운영으로 권위를 잃고 있다. 이번 푸틴에 대한 영장발부에도 우크라이나전쟁에 중립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서방 선진국을 일컫는 '글로벌 노스'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개발도상 제3세계 국가들)는 서방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ICC가 서방 주요국가의 인사에 대해 영장을 발부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심지어 2020년 ICC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헤이그에 있는 ICC에 군대를 보내 재판관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그런 전력 때문인지 이번 ICC의 푸틴에 대한 영장발부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ICC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ICC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촌극을 벌였다. 존 볼턴 전 미 국가안전보좌관도 ICC의 판결은 본질적으로 불법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 상원 세출소위원회에서 'ICC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 유럽 동맹국들에 푸틴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2020년 ICC가 미군을 조사한다고 했을 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협박한 그 미국과 너무나 다른 모습다. 결국 ICC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는 그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고아 실태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작년 12월 기준 러시아로 이송된 어린이들이 최소 1만6000명에서 최대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중 약 8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고 보고 있다. 유니세프(UNICEF)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인 작년 3월 30일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200만 명의 어린이 난민이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고 추산했다. 이밖에 국내에 추가로 250만 명의 어린이가 난민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이 지역 어린이의 60%가 집을 잃었다는 보고서도 냈다.

러시아로 이주된 어린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 러시아가 밝힌 2000명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보고 있다. 19세기 이래 시베리아 강제추방 등 '이주'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록을 지닌 러시아이고보면 연고가 없는 어린이를 러시아로 이주시키려는 생각은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주는 시인하면서도 '인도주의적 보호'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이주시킨 아동들에 대해 낱낱의 신상명세를 작성하고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후 보호자가 확인될 경우 귀환시킬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은 보호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으며 아이의 희망에 따라 가정에 임시 입양되고 있다고도 했다.

◇서유럽으로 간 수만 명 어린이들은 어디에 있나

한편, 우크라전 발발 이후 5만~6만명의 어린이들이 서유럽으로 이동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 미 국방장관 선임보좌관을 역임한 군사평론가 더글라스 맥그리거 예비역 대령이 이달 1일 유튜브에서 제기했다. 그는 이들의 행방에 대해 현재 알려진 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유니세프와 UNHCR의 자료도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서유럽 대량 유입을 확인해준다. 현재까지 폴란드로만 11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루마니아 몰도바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에도 수십만 명의 어린이가 유입됐다. 그러면서 유니세프는 이들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 착취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니세프는 안전한 탈출 경로가 없어 포위된 지역에 발이 묶이거나 떠날 수 없는 어린이와 가족에 대해 관련국이 관심을 가져줄 것으로 요청했다.

서유럽으로 유입한 어린이들에 대한 안전은 온전히 이들 국가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미국과 EU는 그들이 어디에 있고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아직 밝힌 바가 없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푸틴을 '어린이 납치범'으로 몰아 ICC로 하여금 영장을 발부하도록 했다. 푸틴을 법정에 세우려 하기 전에 먼저 서유럽 등지로 이동한 어린이 행방부터 조사해야 한다. 작년 5월 스페인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 30명을 태운 버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들에 대한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이를 두고 미성년 인신매매 등 음모론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서구가 21세기 접어들며 보이는 정신적 피폐 현상은 심각하다. 아동 인신매매가 개발도상국 저리가라 할 정도로 횡행한다. 특히 소수겠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일부 엘리트들의 미성년 성 착취 및 소아성애 현상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수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 착취 행각에 세계적 거부, 왕족, 유명 인사들이 대거 관련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인지 모른다. 미국과 EU 등 서방은 러시아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ICC의 푸틴에 대한 영장발부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실종을 러시아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이주 시킨 것이 과연 어린이 납치, 유괴인지는 객관적 조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미국과 EU도 서유럽으로 이주한 어린이들의 행적을 조사해 밝혀야 한다.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ICC가 푸틴을 기소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쇼로 비친다. 푸틴이 어린이 납치범인지 여부는 객관적이고 정밀하고 정확한 조사를 벌인 후에 내려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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