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을 보며 상상한 나의 60대 전성기 [삶과 문화]

입력 2023. 3. 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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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흘려보내지 못할 때가 있다.

3년 전, 가까운 동료가 내게 한 "김경희도 한때 잘나갔는데"라는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처럼.

'그러네? 예전에 비해서 외주 제안도 줄어든 것 같은데?' 그러고는 '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간 건가?' 생각하며 미래의 가능성마저 의심한다.

한 사람의 전성기는, 그 삶을 직접 살고 있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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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미셸 여가 12일 제95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AP 뉴시스

타인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흘려보내지 못할 때가 있다. 3년 전, 가까운 동료가 내게 한 "김경희도 한때 잘나갔는데"라는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처럼.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 주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한다. '그러네? 예전에 비해서 외주 제안도 줄어든 것 같은데?' 그러고는 '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간 건가?' 생각하며 미래의 가능성마저 의심한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은 결국 작은 서점을 꾸리는 일에서도, 글을 쓰는 일에서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었지만, 작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별다른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치열하게 살면서 부귀영화와 전성기를 꿈꿨지만, 지금은 경기침체라는 말에 작아지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바빠 간신히 해야 할 일만 하며 살고 있다. 그즈음 전해진 오스카영화제에서의 미셸 여(량쯔충·양자경) 배우의 여우주연상 소식. 유색 인종 두 번째 여우주연상, 동양인 최초 여우주연상 등 수상을 수식하는 타이틀도 물론 유의미했지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수상소감이었다. "여성 여러분,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마세요."

미셸 여가 누구인가? 데뷔 전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성룡과 CF를 찍고, 데뷔작에서는 조연으로 활약했다. 다음 해 1985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되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부터는 미국에서 많은 작품으로 활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10년 뒤, 60대에도 또 전성기를 만들어 낸 배우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갖고 살아왔으니, 평가도 숱하게 들었을 것이다. 한때는 찬사를 받다가도 또 한때는, 다른 배우와 비교당하며 전성기가 지났네 따위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겠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자면, '이렇게 많은 작품을 했다니?'가 아니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평가에 시달리며 살아왔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미셸 여는 1984년 연기를 시작해서 1987년에 결혼하여 은퇴하고 다시 복귀하기까지 5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홍콩에서 활약하다가 2000년대부터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 37세에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한 셈이다. 또한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5개월 동안 무술을 배워 직접 액션연기를 해냈다. 그렇다. 미셸 여의 전성기는 꾸준히 활동하고, 도전하고, 배운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냈을 때 독자들의 반응과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받는 타인의 평가에 자꾸 흔들린다. 흔들리다 매번 반응과 평가에 걸려 넘어지길 반복했다. 전성기를 운운하며 평가하는 말도, 좀 더 좋은 방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견이 아니라면 흘려들었어야 했다. 한 사람의 전성기는, 그 삶을 직접 살고 있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필요한 일. 30대인 나는, 미셸 여를 바라보며 내 60대 전성기를 상상해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이들의 활약을 보며 질투했던 마음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조급함도 줄어든다. 오늘의 내가, 또 앞으로의 내가 할 일은 타인의 평가로 나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계속 배우고 시도해나가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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