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오타니의 만화야구
무시무시한 강속구 투수 겸 홈런 타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야구만화의 클리셰다. 그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팀을 구하고 우승으로 이끄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실제 그런 만화 주인공 같은 투타 겸업 선수는 1930년대 베이브 루스 이후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인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9)가 나오기 전까지 얘기다. 지금 오타니는 만화 같은 야구, 어쩌면 만화를 능가하는 야구를 펼쳐보이고 있다. 엊그제 일본 우승으로 막을 내린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에서 만화야구의 진수를 보였다.
결승 상대는 세계 최강 미국. 경기 전 오타니는 동료들에게 짧고 굵은 연설을 했다. “그들에게 동경심을 가지면 넘을 수 없다. 오늘 하루는 동경심을 버리고 승리만 생각하자”고 했다. 이후 3-2로 앞선 9회초, 3번 지명타자로 뛴 오타니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미국 주장이자 최고 몸값 타자인 빅리그 팀 동료 마이크 트라우트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다. 세기의 대결, 극적인 승리. 만화 같은 장면의 연속이었다. 미국 언론은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투수로 2승1세이브, 타자로 타율 4할3푼5리. 투타에서 맹활약한 오타니가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건 당연했다. 하지만 투수나 타자 중에서 1명을 가려야 하는 고민을 없앤 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미국 CBS스포츠는 “오타니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오타니 이전의 오타니’로 불리는, 102마일(164㎞) 강속구를 뿌리고 전광판 상단에 홈런을 꽂는 시게노 고로라는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있었는데 그는 오타니가 어린 시절 즐겨 본 야구만화 <메이저>의 주인공이다. 시게노는 어깨 부상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선수라 투타를 겸하는 오타니가 그를 앞선다. 현실이 만화를 능가한 셈이다.
오타니는 야구선수로서 잘 던지는 동시에 잘 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에 따라 인생 계획표를 세워 빅리그에 도전했고 꿈을 이뤄가고 있다. 실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다”며 경기장의 쓰레기를 줍는 행동마저 만화스럽다. 만화보다 흥미로운 오타니의 스토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오타니의 만화야구는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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