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 붉은 바다…잠들지 않는 서해수호

김소연 기자 2023. 3. 2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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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서해수호의날을 하루 앞둔 23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한 유족이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최은성 기자

2002년 6월 29일, 2010년 3월 26일, 2010년 11월 23일.

누구의 아들이었고, 아빠였던 55명이 붉은 피를 흘리며 서해에 잠들었던 그날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대한 추모는 시민들의 관심 밖에 자리하며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고, 기념행사는 대북 관계와 안보 등과 연계되며 여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참석이 단 두 번에 그치며 '눈치보기' 등의 비판을 받았고, 앞서 천안함 피격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10여 년을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유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55용사들의 죽음을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가족과 참전 장병,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주요인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거행됐다.

올 해로 8회째를 맞은 이번 기념식은 '헌신으로 지켜낸 자유, 영웅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용사들을 추모하고,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어느 해보다 의미 있게 진행됐다.

해군도 서해수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동·서·남해 전(全) 해역에서 실사격 훈련을 포함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을 시행 중이다. 21일엔 제2연평해전 교전 시간인 오전 10시 25분 대함사격, 천안함 피격 시간인 오후 9시 22분 대잠사격을 동시 실시했다. 이와 함께 각 지자체에서도 특별안보 사진 전시회, 백일장 대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끊임없이 지속돼온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상기하고, 국가 안위의 소중함을 다져 국민 안보의식을 결집하고자 지난 2016년 서해수호의 날을 제정했다. 이전까진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 교전별로 정부기념행사를 진행해왔지만, 행사통합에 대한 유가족의 이해와 설득 과정을 거쳐 2016년부터 3개 사건을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다.

취임 후 첫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찾는 윤석열 대통령은 '강한 대한민국' 메시지를 전하며 보훈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우리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맞서 서해를 수호한 용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 하고 있다"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서해수호 용사들께 경의를 표하며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정세는 국민 안보의식 강화 필요성을 더욱 부추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외교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북한의 도발은 서해상에서만 그치고 않고 핵실험, 미사일 공격 등 과시형 도발로 이어져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3일부터 23일까지 11일간 진행된 한미연합연습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 훈련 전후로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훈련 시작 하루 전에는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6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쐈고, 19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이어 22일엔 순항미사일 4발을 발사했다. 이처럼 북한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도발 의지는 서해수호의 날을 제대로 인식하고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켜야 할 당위성을 높인다.

하지만 서해수호의 날이 사회에서 더 깊이 각인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지자체와 기관 등에서 매년 추모활동을 하고 있지만 3월 넷째 주 금요일이 서해수호의 날이라는 사실과 이 날이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전사 용사들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서해수호의 날을 포함한 각 보훈기념일에 대한 시민 인식 제고 방안·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대학생 정모(21·유성구 궁동) 씨는 "서해수호의 날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날인 건 알고 있지만 관련 사건 등에 대해선 자세히 모른다. 기념일 교육이나 홍보를 통해 더 알려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오는 6월 국가보훈부 승격을 앞두고 있는 국가보훈처는 이전보다 확대된 권한을 바탕으로 보훈가족 지원을 강화하고 보훈문화 확산 정책을 수립·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만희 대전지방보훈청장은 "국가유공자를 위한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지역 내 보훈문화 확산을 통해 '충절의 고장' 충청이 '보훈의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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