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젊은 학자의 다정다감한 '한자 줍기' 여정

전하연 작가 2023. 3. 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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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한자로 의사소통을 했는데요. 


소리 글자인 우리 한글과 달리 글자 하나하나에 뜻을 담는 형태이다 보니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창이 되기도 하죠. 


한자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최다정 작가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어서 오세요.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네,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먼저 시청자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네, 안녕하세요. 


한자 줍기라는 책을 출간한 최다정입니다. 


책의 제목처럼 저는 한자로 쓰인 고전을 공부하면서 그야말로 한자 줍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 수천 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한자'라는 문자로 남겨둔 기록들을 발굴해서, 그것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길을 걷는 중인데요.


이렇게 매일을 한자의 세계에서 지내오면서 느낀 감동을 담아 얼마전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작가님께서는 이전에 다른 직장을 다니기도 하셨는데요. 


이 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되신 이유 궁금합니다.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옛날 사람이 한자로 쓴 고전 문학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에 이땅에 살았던 누군가도 결국에는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삶의 희노애락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기에서 굉장히 큰 위안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한자라는 옛 문자를 연결고리로 삼아서 고전을 공부하는 일이, 결국에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저와 우리들의 오래된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작업이라는 점에 굉장히 큰 매력을 느껴서, 공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하지만 옛 문자와 옛글을 공부한다는 일이 쉽지만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옛글을 탐구하는 기쁨과 슬픔은, 모두 그것이 '과거'에 쓰인 것이라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옛글을 해독하다 보면 과거를 드나드는 문이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요. 


혹은 고서를 손으로 만지면서 읽을 때에는 마치 과거라는 시간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이렇게 옛날 사람들과 연결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 정말 설레고 기쁜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금 연구하는 옛글이 어렵고 난해할 때에는 과거를 살았던 작가를 직접 만나서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번에 내신 책도 그러한 연결 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 첫 책이시죠.


한자 줍기 어떤 내용 담았습니까?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제가 공부를 하다가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온 한자들을 발견하면 이것을 옮겨 적어 둔 수첩이 있는데요,


그 수첩 표지에 한자 줍기라고 제목을 달아두었습니다. 


옛글을 공부한다는 것이 때로는 독백처럼 느껴지거나 또 외로울 때도 굉장히 많았는데요. 


그럴 때 이 한자 줍기 수첩에 적어둔 아름다운 한자들이 제가 하는 말들이 혼자 말이 아니라면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이 공부하는 저에게는 굉장히 큰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한자를 어렵다고만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한자가 이렇게 다정한 문자라는 것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런 마음을 담아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책에 모두 54개의 한자어가 나옵니다. 


보면서 참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글자들 중에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글자는 어떤 걸까요?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제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단어를 꼽자면 '尙友[상우]' 라는 단어입니다.  


이 상우는 글을 매개로 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사람과 벗삼는다라는 뜻인데요. 


제가 맹자를 읽다가 줍게 된 단어입니다. 


옛글에 쓰인 한자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천천히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옛날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 사람과 친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요. 


그래서 때로는 이 옛 학자가 저의 벗이 되어서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가 어려운 공부를 하는 의미와 보람이 이 상우라는 단어 안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렇다면 이렇게 글을 통해서 벗이 된 옛 학자 중에서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까요?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옛 벗은 조선 후기에 살았던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이렇게 4명의 문인 학자입니다. 


이들은 조선의 왕실 도서관이자 학술 연구 기관이었던 규장각에서 서적 검토하는 일을 함께 했었는데요.


이들끼리 우정이 끈끈했고 또 서로 주고받은 시나 편지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흔적들을 보면 조선의 학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당시의 문학과 학문에 매진했던 열정이 전해지는데요.


이런 옛 선배 학자들이 공부에 임했던 그런 자세에서 저는 큰 감흥을 얻고는 합니다.


서현아 앵커 

이 네 명의 학자들도 우정이 끈끈했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작가님과도 우정을 나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한번 읽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날실 '經' 자를 소개한 <세로로 선 우리는 서로 기대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책의 한 대목을 읽어봐 드리겠습니다. 


"경(經)은, 베틀에서 열을 맞춰 세로로 뻗은 날실처럼 변치 않는 중심축이 되어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세로로 선 것에 기댄다. 


하늘과 땅을 향해 뻗은 나무에, 사람에, 책에. 세로로 서 있는 것들이 만나 면(面)을, 하나의 세계를, 직조(織造)한다.


 

자신의 축을 붙잡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주파수가 통하는 다른 축을 만나 기대고 기대어 '우리'가 된다."


서현아 앵커 

이 구절을 고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이때 '경' 자는 한자리에서 꿋꿋하게 서서 축이 되어주는 존재를 의미하는데요. 


한문 공부를 하는 사람은 공자나 맹자의 언행이 담긴 경서에 기대어서 공부를 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은 책에 기대기도 하고 아니면 또 나와 함께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늠름한 나무에 등을 기대서 쉼과 위안을 얻는 것처럼 이렇게 세상 모든 존재들은 서로 기대어서 '우리'로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응원으로 다가왔습니다.


서현아 앵커 

'경'이라는 이 한 글자에도 참 다정한 사유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한문학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최다정 한문학자 / '한자 줍기' 저자 

제가 한문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문 실력에는 정말 끝이 없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낍니다. 


그래서 옛 문인이 한자로 뭐라고 써두었고 글에 어떤 마음을 숨겨두었는지 그것을 더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 게을러지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공부해 나가고 수련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가깝고도 절실한 계획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지금도 도서관 고서실에서 먼지 쌓인 채로 잠자고 있을 수많은 그런 옛 작품들을 발굴하고 또 연구해서 많은 분들께 그것을 알려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꿈입니다.


서현아 앵커 

언어와 글자를 접하는 경험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겠죠.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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